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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전 종식] 막내린 20년 전쟁…돌고돌아 원점

연합뉴스 입력 08.30.2021 04:40 PM 수정 08.30.2021 04:41 PM 조회 478
미, 철수시한 1분 앞두고 대피·철군 완료…아프간 정권은 다시 탈레반 손에
미 철수 과정서 오판에 '제2의 사이공' 조롱도…녹록지 않은 '포스트 아프간'
대통령궁 점령한 탈레반 
미국 역사상 최장기 해외 전쟁인 아프가니스탄전이 30일(현지시간) 막을 내렸다.

미국이 철수 시한인 31일을 1분 남겨둔 30일 밤 11시 59분(아프간 현지시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에서 민간인 대피 작전을 끝내고 20년간 주둔한 미군 철수까지 마무리해 이날부로 아프간전은 끝났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9·11 테러가 발생한 다음 달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된 미국 주도의 서방 진영과 아프간 내 탈레반의 싸움이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것이다.

애초 전쟁의 원인 제공자는 탈레반이 아니었다. 미국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을 당시 아프간 정권을 쥔 탈레반에 인도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하자 아프간을 침공해 전쟁이 시작됐다.

유럽 등 서방과 합세한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빈라덴까지 사살했지만 미국은 내내 전쟁의 수렁에 빠져 나오질 못했다.

알카에다 축출 목표는 탈레반 소멸로 바뀌었고, 아프간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부 수립이라는 임무까지 생겼다. 그러나 산악 지대의 특성을 십분 이용한 탈레반은 끝까지 버티며 게릴라전, 테러를 통해 미국을 괴롭혔다.

조지 W. 부시 때 시작된 전쟁은 이후 물적, 인적 피해 증가와 더불어 미국 내 반전 여론 고조라는 저항에 부딪혔다.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등 정권마다 아프간전 종식과 미군 철수를 내세웠지만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탈레반을 소탕할 수 있다는 국방부 등 매파의 주장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왼쪽부터 아프간전 이끈 럼즈펠드 국방장관, 부시 대통령, 체니 부통령 


당연히 전쟁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고 인명 피해도 커졌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 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6천 명), 탈레반 반군(5만1천 명), 아프간 민간인(4만7천 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미군 2천448명이 숨지고 미 정부와 계약을 한 요원 3천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천144명 등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1천165조 원)에 달한다.

미국의 세계경찰 역할에 부정적이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취임은 변곡점이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포함한 동맹군이 철군하는 평화협정을 작년 2월 탈레반과 맺었다. 이 합의에 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1만2천여 명이던 미군을 지난 1월 퇴임 시 2천500명으로까지 줄였다.

새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합의대로 철군이냐, 병력을 충원해 전쟁 계속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 속에 지난 4월 미군 철수, 즉 아프간전 종식을 최종 결정했다.

애초 철군 시한을 9·11 테러 20년인 9월 11일로 했다가 그마저도 8월 31일로 당기며 고삐를 죄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탈레반이 미군 철수와 맞물려 파죽지세로 진격하자 정부군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 채 손을 드는 바람에 영토를 급속히 탈레반에 내주는 상황이 벌어졌다.

바이든 정부가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군이 탈레반을 자력으로 막아내거나, 정권이 무너진다 해도 내년 말, 적어도 올해 말까지는 버틸 것으로 오판한 결과였다.

특히 탈레반은 지난 15일 마지막 보루이던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마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2001년 이후 20년만의 정권 재장악에 성공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아프간 정부의 붕괴까지 1∼2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했지만 11일 만에 무너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다.
 

아프간 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 도중 고개 숙이는 바이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테러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장 미국과 동맹의 국민,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미국은 군대 6천 명을 새로 투입해 탈출로인 카불 공항을 통제하며 힘겨운 대피작전에 들어갔다.

다급해진 미국은 어제의 적인 탈레반과 협의하는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헬기를 이용해 자국민을 공항까지 실어나르기도 했다. 1975년 남베트남 패망 직전 헬기를 왕복 운항해 미국인을 대피시킨 치욕을 떠올린다고 해 '바이든표 사이공'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특히 지난 26일 카불공항 외곽에서 무장조직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을 포함해 170명가량이 사망하는 테러까지 발생해 바이든은 여론의 궁지에 몰린 상태다.
 

대피 과정에서 아프간 수도 카불 상공에 뜬 미 헬리콥터


미군 철수 완료로 아프간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만 '포스트 아프간전' 정국도 만만치 않은 논란 속에 숱한 해결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미국에선 탈레반의 정권 장악 시기 오판, 민간인 대피 과정의 혼선을 둘러싼 바이든 책임론이 거셀 전망이다. 야당인 공화당에선 벌써 바이든 하야나 탄핵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이 당분간 아프간 문제에서 손을 떼기도 어렵다. 추가 대피 작업이 필요한 상황인데다, 탈레반이 현지 조력자 보복에 나설 공산이 크고 여성 등 인권 탄압 우려가 상당하다.

권좌에 오른 탈레반과 관계 설정도 쉽지 않은 문제다. 중국과 러시아는 탈레반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IS-K에 대한 응징 역시 미국의 남은 과제다.

미국의 훼손된 이미지 회복과 함께 철군 과정에서 빚어진 동맹과 불협화음을 해소하고 최우선 목표인 대중 견제 전선에 동맹을 규합하는 숙제도 떠안고 있다.
 

여성 사진 지우는 카불의 상가 모습[언론인 벤 솔로몬 트윗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0년 전쟁에 피폐해진 아프간 역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장 탈레반은 국제사회에서 합법적 정부로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통합과 포용의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천명하지만, 서방이 요구하는 수준에 얼마나 충족할지 미지수다.

여성 인권 존중, 현지 조력자 사면 등을 언급했지만 탈레반의 메시지 자체가 혼재돼 있어 향후 상황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벌써 탈레반의 약속에 반하는 일들이 벌어져 국제사회도 강한 의심의 눈초리를 계속 보내고 있다.

미국이 빈라덴을 사살하고 알카에다를 빈사 상태까지 내몬 것을 제외하면 아프간의 시계는 사실상 2001년 10월 전쟁 개시 이전의 원점 상태로 되돌아갔다는 혹독한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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