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미팅인 스피드데이트를 앞두고 10여일 일찍 호주 시드니로 갔다. 현지 회원들에게 행사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한 어머니에게서 딸을 참가시키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당연히 신청을 받았고, 이런 사실을 호주 매니저들이 있는 소통방에 올렸다, 한 매니저가 놀라면서 “이 여성은 참가하면 안 된다”며 “미팅을 하면 피드백이 안 좋다. 성의가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여성의 프로필을 보니 86년생 회사원, 약간 통통한 체형이다. 예전 같으면 만남이 잘되는 날렵하고 예쁜 여성들을 더 반겼겠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이 더 간다.
그 매니저는 “빨리 환불해 주고 다른 여성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으나 “어머니랑 직접 통화를 했는데 어떻게 취소를 하느냐”며 참가하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이런 실랑이를 하면서 그 여성을 기억하게 됐다.
호주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넓은 나라로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35배 가까이 된다. 대도시 위주로 한인들이 모여 살기는 하지만, 워낙 땅이 넓어서 한국계 배우자를 만나는 게 어려운 편이다.
그래서 모처럼 열리는 한인 미팅에 시드니에서 차로 10시간 이상 걸리는 브리즈번이나 뉴질랜드에서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입구에서 참가자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멀리서 걸어오는 한 여성이 보였다. 그 여성이 아닐까 했는데 예상이 맞았다. 여성은 그날 모인 싱글들 중에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고, 부모와 함께 온 유일한 참가자이기도 했다.
여성이 들어간 후 어머니는 행사장 입구에서 서성거렸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홀 밖의 어머니와 안에 있는 딸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6~7명을 만나는 2시간 동안 그 여성은 표정이 밝았고,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분위기였다. ‘매니저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의아스럽기도 했다.
호감 가는 상대와 명함도 교환하고, 행사 후에는 바로 헤어지지 말고 애프터도 하라고 독려를 했다. 그날 일정이 끝나고 서로 안면을 익힌 사람들이 삼삼오오 홀을 나가고 있는데, 그 여성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오늘 잘 만나셨어요?”
“대화가 잘···안 통···했어요.”
떠듬떠듬 한국어를 하는 여성을 보며 ‘아뿔싸!’ 했다. 어쩌면 그동안 그녀에게 매너 없고 성의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건 언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영어가 더 편한 사람한테 한국어를 잘하는 이성을 소개했다면 만남 결과가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가건 한국인 커뮤니티가 활성화됐을 정도로 한국 교민들이 많다. 부모 세대는 한국인의 정서를 갖고 살지만, 자녀들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어를 알아듣기는 해도 영어가 더 편한 사람, 아예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한국인끼리 만나도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민 1세대에서 3세대로 이어지면서 이렇게 대화가 단절되고, 민족적인 동질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음 세대, 어쩌면 그보다 더 빨리 한국계 배우자 만남이 무의미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해본다.
결혼정보회사 선우 커플닷넷 대표 ceo@coupl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