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건국되던 18세기 후반(1776년 7월 4일 독립 선언 ~ 1789년 3월 4일 연방정부 출범) 당시, 동 서양 세계의 모든 국가는 왕이 통치하던 ‘왕정국가 시대’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생국 미국은 왕정을 거부하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공화정(Republic)을 선택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지구를 뒤흔들 만큼 파격적인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대다수의 미국민들은 공화정 혹은 대통령이란 단어조차 이해 하지 못했었기에 단지 ‘4년짜리 왕’으로 간주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도 행동거지 및 언행을 어찌 해야 할지를 몰라 어색한 왕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건국 아버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정치 역사를 학습하여, 왕 한 명의 기분에 따라 국가가 ‘좌지우지’ 되는 왕정보다는 ‘로마 공화정’처럼 법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이 다스리는 시스템이 가장 인류학적인 형태라고 굳게 믿고들 있었다.
이에 미국 건국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미국 헌법을 만들 때도 로마 공화정을 롤모델로 삼았었는데 그로인한 시스템의 구조와 그 부작용까지도 소름 돋게 닮아 있다.
어쨋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미국의 ‘초기 공화정’은 이렇게 시작되어 어언 250여년이란 세월이 흘러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고대 로마 역사를 통한 ‘로마 공화정에서 로마 왕정’으로 다시 바뀌는 모습을 현재 미국의 시각으로 살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자.
사실, 지금의 미국 정치·사회적 현상을 보면서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와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경고하는 역사학자와 정치학자들도 꽤나 있는데 그들의 목소리에 또 한, 귀 기울여 보기로 하자.
기원전 52년, 당시, 로마의 정치판은 피를 먹고 자란 짐승과도 같았다.
갈리아를 정복 중이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당시, 절체절명의 정치 위기에 몰려있었다.
로마 공화정의 삼두정치의 한 축을 이루었던 로마 제일의 갑부 크라소스가 파르티아 원정에서 처참하게 목이 잘리자 권력의 균형도 무너졌으며
또 한, 카이사르의 든든한 동맹이며 사위였던 폼페이우스는 아내 율리아가 사망하자 로마 원로원의 보수파들과 손을 잡고 카이사르의 등에 비수를 꽂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로원의 정적들은 “저 오만한 장군을 로마로 압송하여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이를 갈며 독설을 퍼부었다.
카이사르에게 있어 갈리아 원정의 실패란 정치적 생명의 끝이며 물리적 죽음을 의미했다.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까지 이 곳 갈리아 진흙탕에서 정치적 생명과 목숨을 건 ‘완벽한 승리’가 절실했으며 또 한, 유일한 동아줄이기도 했다.
어설픈 평화조약이나 부분적인 승리로는 로마의 굶주린 늑대들을 결코 잠재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오직 갈리아 전체의 무조건적인 항복,
그것만이 카이사르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었던 셈이다.
결과적으로, 알레시아 공방전을 끝으로 대승으로 이끈 카이사르는 갈리아라는 거대한 영토를 영원히 로마의 지배하로 편입시키는데 성공했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는 로마의 대영웅이 되어 화려한 개선식과 함께
로마 시민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따라서 막대한 부와 흔들리지 않는 정치력과 최강의 군사력을 손에 거머 쥘 수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고대 로마의 치열했던 공화정 (Republic)의 문을 닫고 강력한 1인 지배 체제인 황제정(Empire)의 시대를 여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 과연 무엇이 공화정의 문을 닫게 만들었단 말인가?
당시, 로마는 지중해를 장악하며 거대한 제국이 되었지만,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작은 도시국가 시절의 '원로원 중심 공화정' 이었음을 지적한다.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엔 원로원의 의사 결정이 너무 느렸고 새로운 영토에 관한 정보도 무지했으며 한마디로 너무 나태하고 무능했다.
요약하자면 "도시국가용 시스템(공화정)으로는 더 이상 이 거대한 영토와 혼란을 감당할 수 없으니, 강력한 권력을 가진 한 명의 지도자라도 나와서 판을 정리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으로 요약된다.
고대 로마는 정복 전쟁으로 얻은 수많은 노예와 함께 대농장 (Latifundium)을 소유한 부유층은 터무니없이 부자가 된 반면, 평범한 자영농(중산층)은 몰락해 대부분의 민중은 실업자로 전락했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오직 부유층과 저소득층만이 존재하는 양극화 현상에 이어 '포퓰리즘'의 부상과 함께 민중의 분노를 자극하며 "기득권 원로원을 타도하고 시민들에게 땅과 곡물을 나눠주자!"고 외친 그라쿠스 형제 같은 정치가들도 등장했다.
이 시점부터 로마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아닌 극단적인 진영 싸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대 미국의 경우로 예를 들자면, 세계화와 IT 혁명에 더불어 AI 혁명으로 지능 로봇들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미국 중산층(특히 백인 노동자층)이 몰락한다.
이들의 소외감과 분노를 파고든 것이 바로 현대 미국의 포퓰리즘(Populism) 정치이다. "기득권 워싱턴 정치를 갈아엎자"는 슬로건이나 극단적인 관세, 세금·복지 논쟁은 로마 말기 평민파와 귀족파의 갈등 양상과 매우 흡사하다.
또한, 고대 로마의 공화정 말기 원로원들은 국가 전체의 미래보다 '내 진영의 이익'과 '상대방 엿 먹이기’에 집착했다.
상대 진영이 제안한 법안은 국가에 이로워도 무조건 거부(Veto)했고, 제도적 취약점을 이용해 의사진행을 방해함으로써
규칙과 관행이 깨져 정치적 타협은 불가능해졌고 시스템은 마비되었다.
이는, 오늘날 미국의 양당제(민주당 vs 공화당)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미 의회 역시 '교착 상태(Gridlock)'가 일상화 되어가는가 하면,
상대 당의 법안이라면 덮어놓고 반대하거나, 필리버스터(의사진행 방해)를 남발하고, 심지어 예산안 합의를 거부해 연방정부를 마비시키는 '셧다운(Shutdown)' 사태를 주기적으로 발생시켜 국가의 시스템보다 '당파성'이 우선시 되는 현상들과 흡사하다.
아무튼, 고대 로마의 정치 시스템 (원로원)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오직 당파싸움에만 열을 올린다.
고로, 로마 시민들은 답답한 의회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
그리고 "차라리 법이고 뭐고 다 때려 부수더라도, 힘 있는 영웅 - 강한 정치가 카이사르 - 같은 인물이 나와서 내 먹고 사는 문제 좀 시원하게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며 독재자를 자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점이 고대 로마의 공화정이 무너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라는 아주 단순한 숙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카이사르 사후, 그의 뜻을 이어받은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로마 황제로 등장하는데,
옥타비아누스는 이 문제를 정확하게 간파하여 풀어냄으로 '존엄한 자'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까지 얻게 된다.
과거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똑같은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지금의 미국 정치·사회적 현상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각은 과연 어떨까?
그것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