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클래스

잔 김

스페인어 강사

  • 스페인어 교육 및 팝송전문 기타교실 운영
phone_android 213-649-5147

지중해 이야기와 1차 포에니 전쟁

글쓴이: Artchocolate  |  등록일: 09.02.2025 09:03:46  |  조회수: 85
우리가 사용하는 ‘지중해’란 단어는 중국어 ‘地中海’라는 글자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말 그대로 ‘육지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뜻글자 이다.

이 글자는 중국인들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당시의 라틴어를 번역한 것인데 유럽인들은 그 바다를 ‘Mare mediterráneo’라고 불렀다.

여기서 Mare는 바다, medi는 중간, 그리고 terráneo는 육지의, 라는 라틴 단어들로 구성된 일종의 뜻글자었던 것이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했을 즈음의 지중해에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페니키아의 식민지였던 ‘카르타고’라는 강력한 해상 무역 제국이 건설된 상태였다 .

당시, 이들은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해안, 사르데냐 섬, 그리고 시칠리아 섬의 서쪽 절반을 지배하며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군대는 용병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뛰어난 해군력은 당대 최강으로 손꼽혔다고 한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는 이제 막 떠오르는 신흥국이었는데 로마의 강점은 강력한 육군력과 라틴 동맹 체제를 기반으로 한 풍부한 군사력에 있었다.

하지만 해상 활동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시의 해군력은 카르타고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은 기원전 264년부터 기원전 241년까지 로마 공화국과 카르타고 사이에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23년간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른바, 1 차 포에니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이 전쟁은 주로 시칠리아 섬과 그 주변 해역,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진행되었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시칠리아 섬의 메사나(Messana) 시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메사나를 장악하고 있던 맘메르티니 용병들이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의 공격을 받자 각자, 로마와 카르타고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었다.

카르타고가 먼저 메사나에 개입하여 주둔군을 두었고, 이에 로마가 군대를 보내 메사나를 공격하면서 강대국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의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지중해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었고 해상 무역의 강국이었던 카르타고는 이미 지중해 곳곳에 무역 거점 도시를 건설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대였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므로, 양측 모두 시칠리아를 장악하려는 야심이 충돌하면서 전쟁이 불가피 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쟁 초반에는 시칠리아에서 지상전이 주로 벌어졌는데 로마는 시라쿠사를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고 카르타고의 주요 거점인 아크라가스(Akragas)를 포위하여 크게 승리했다(기원전 262년 아크라가스 전투).

로마는 해상 강국인 카르타고에 맞서기 위해 강력한 해군을 건설해야 할 필요성이 절감했기에 까마귀 라는 뜻인 "코르부스(Corvus)" 라는 까마귀 부리 형태의 승선용 다리를 개발하여 해상에서도 지상전처럼 싸울 수 있는 전술을 도입했는데 두번 째 전투는 해전으로 기원전 260년에 로마 해군이 코르부스를 활용하여 카르타고 해군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는데, 이 때 로마 해군의 자신감을 높여주게 되었다.

기원전 256년에 발생한 에크노무스 해전은 역사상 가장 큰 해전 중 하나로, 로마 해군이 대승을 거두며 전선을 북아프리카 해안으로 옮기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후로, 로마는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본토를 침공하여 아스피스(Aspis)와 튀니스(Tunis)를 점령했지만, 기원전 255년 튀니스 전투에서 카르타고의 스파르타 용병장 잔티푸스 (Xanthippus)가 이끄는 군대에 패배하여 큰 손실을 입고 아프리카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드레파나 해전 (기원전 249년)에선 카르타고가 유일하게 승리한 대규모 해전으로, 로마 해군이 큰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엎치락 뒤치락하던 전쟁은 아에가테스 제도 해전 (기원전 241년)에서  로마가 새롭게 건설한 함대가 카르타고 함대를 격파하면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가 있었다.

이 패배로 카르타고는 해상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시칠리아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23년간의 긴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맺음을 할 수가 있었다.

전쟁의 결과로 로마는 시칠리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획득함과 동시에  카르타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으며, 시칠리아 섬에 대한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그해, 로마의 첫 해외 속주로 편입되었다.

그 후, 로마는 사르데냐와 코르시카 역시 속주로 만들었다.

제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를 지중해의 새로운 해상 강국으로 부상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전쟁 중 건설된 강력한 함대는 이후 600년간 로마의 해상 지배력의 기반이 되었다.
DISCLAIMERS: 이 글은 각 칼럼니스트가 직접 작성한 글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이 내용을 본 후 결정한 판단에 대한 책임은 게시물을 본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라디오코리아는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보증하지 않으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라디오코리아의 모든 게시물에 대해 게시자 동의없이 게시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 등의 행위는 게시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하는 경우 저작재산권 침해의 이유로 법적조치를 통해 민,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This column is written by the columnist, and the author is responsible for all its contents. The user is responsible for the judgment made after viewing the contents. Radio Korea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is article and assumes no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using this information. In principle, all posts in Radio Korea are prohibited from modifying, copying, distributing, and transmitting all or part of the posts without the consent of the publisher. Any modification, duplication, distribution, or transmission without prior permission can subject you to civil and criminal liability.
전체: 142 건
1 2 3 4 5 6 7 8 9 10







사람찾기

행사/소식

렌트&리스

비지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