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담까지 받을 정도는 아니에요.”
상담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성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다.
“그냥 제가 알아서 해요.이야기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요?”
2024년 한국의 남성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41.8명으로 여성 16.6명의 약 2.5배였다.
미국 역시 남성 자살률이 여성보다 훨씬 높고, 전체 자살 사망자의 약 79%가 남성이다.
실제로 나와 상담하는 내담자 10명 중 남성은 한 명뿐이고, 그마저도 엄마의 권유로 상담을 시작한 학생이다.
왜 남성들은 힘들 때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울까.
우리는 오랫동안 남자아이들에게 감정보다 강함을 먼저 가르쳐왔다.
“남자가 그 정도 가지고 울면 어떡해.씩씩해야지. 남자는 강해야지.”
힘들어도 참고,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고,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책임감 있는 남자의 모습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나 지금 힘들다”고 말하는 일이 도움 요청이 아니라 약함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감정을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면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모든 감정을 “짜증 난다”는 말 하나로 표현해왔다면, 나의 진짜 감정을 살펴봐야 한다.
분노 아래에는 서운함이, 무기력 아래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 과도하게 일하는 사람에게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이, 사람들과 멀어지는 사람에게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상담사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40~50대 남성들이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인데도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덧붙인다.
“뭐, 나만 이러겠어요. 다들 이 정도는 힘들지 않나요.”
어떤 분들은 마음보다 몸의 불편함을 먼저 이야기한다. 소화가 안 되고, 잠을 못 자고, 여기저기 아프다고 한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통증과 피로는 계속된다. 이러한 증상들은 스트레스가 몸으로 나타나는 신체화 증상일 수 있다.
특히 50대는 여러 방향의 상실을 동시에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예전 같지 않은 몸, 달라지는 직장 안의 위치, 부모의 노화, 자녀의 독립, 관계의 변화까지. 겉으로는 잘 버티고 있어도 이런 변화들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분들께 상담을 권하면 대뜸 이렇게 말한다.
“이 정도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맞는 말이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다.
하지만 그 고민을 바라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어려움을 겪어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이건 바뀔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문제 앞에서 쉽게 멈추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고정 마인드셋이라고 한다.
반대로 “지금은 힘들지만 내가 다르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 태도는 성장 마인드셋이다. 내가 어떤 생각에 붙잡혀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순간, 같은 문제도 다르게 풀어갈 수 있다.
상담은 약함을 고백하는 시간이 아니다. 조금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 ‘나 사용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끝까지 버티다 한 번에 무너질 필요는 없다.
예전의 나 같지 않고, 자꾸 화가 나고, 무기력해지고,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면 마음의 신호를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그때는 혼자 더 버텨보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상담실은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 여는 마지막 문이 아니다. 상담을 받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 나를 달래고, 나를 다루는 법을 알아가는 것이며, 내 삶을 더 편안하게 살아내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