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기술독립을 위한 고난의 여정
자동차 공장엔 수많은 기계가 들어간다. 공작기계라고 하는데, 크게 선반이나 드릴 같은 범용기와 엔진 제작 등 특정 목적의 전용기로 나뉜다. 범용기는 어떻게든 만들어 썼지만, 전용기는 거의 수입에 의존했다. 정세영 사장은 장기적으로 30만 대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공작기계를 스스로 개발하고 제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1978년 2월 1일, 현대차는 공작기계사업부를 발족하고 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과 기술제휴 협정을 맺었다. 1980년 3월, 공작기계 공장을 완공하고 9월엔 일본으로 처음 수출했다. 시행착오도 수없이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다. 정 사장의 설득에 협력업체들도 동참했다. 기술을 확보하고 나니 설령 수입하더라도 바가지 쓸 일이 없었다.
1982년 3월 2일,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정식계약을 맺었다. 이제 30만 대 규모의 공장을 세울 차례였다. 당시 현대차의 생산규모는 15만여 대. 정세영 사장은 연구소 설립도 밀어붙였다. 엔진과 변속기를 자체개발하지 않고선, 기술독립의 꿈을 이룰 수 없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1984년 11월, 현대차는 경기 용인의 마북리에 연구소를 준공했다. 현대차는 울산시 태화강 인근 부지를 사서 종합 주행시험장 건설에도 나섰다. 1983년 12월, 24만평 부지에 20㎞의 주행시험로를 포함한 시설을 완성했다. 이듬해엔 충돌시험장과 시험 연구실 건물도 지었다. 1985년 2월 6일, 마침내 30만 대 공장이 준공식을 치렀다. 같은 날, 현대차는 전륜구동 기술로 개발한 X카 프로젝트의 결실도 공개했다.
<출처 : Daum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