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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지막 모습.. 대표팀 최고참 차두리

주형석 기자 입력 01.24.2015 08:31 AM 조회 3,718
한국 축구 대표팀의 최고령 선수 차두리(FC서울)의 마지막 경기 하나하나가 축구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차두리는 오는 26일 이라크와의 2015 호주 아시안컵 준결승과 결승전 혹은 3-4위전을 마지막으로 대표팀 생활을 마무리한다. 

그는 우리 나이로 35세, 한국 선수들 가운데 역대 아시안컵 최고령 출전자로 기록됐다.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게 자연스러울 시기임에도 차두리의 은퇴를 만류하는 팬들이 많다.

타고난 스태미너에 원숙한 기술까지 녹아들어 경기력이 전성기를 치고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슈퍼스타' 차범근 전 대표팀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는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한국의 4강 신화에 한몫을 하면서 이름을 제대로 알렸다. 

독일 분데스리가 같은 빅리그 클럽과 한국 대표팀에서 활약해왔으며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서도 하늘을 찌르는 인기를 누렸다. 

많은 사랑을 받은 스타이기 때문에 이별이 더 아쉽고 탁월한 경기력이 더 아까울 수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차두리의 은퇴 결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차두리는 2012년 독일 프로축구 뒤셀도르프와의 계약을 해지하고서 축구장을 한동안 떠난 적이 있었다. 

독일에서 석 달 가량 책가방을 메고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영어를 배우려고 학원에 다니는 등 다른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공백기를 보냈다.

당시 은퇴 결심을 번복한 것은 길거리,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 자신과 마주치는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보내는 사랑이었다. 

"한국에서 공 차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모두 하나같이 말씀하셨어요. 제가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은퇴를 번복하고 국내 프로축구 K리그에 입문해 그라운드에 돌아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이같이 말한 적이 있다. 

차두리는 과거 스코틀랜드 프로축구 셀틱과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은 기성용(스완지시티)의 권유에 따라 FC서울에 입단했다. 

사실 차두리는2013년, 2014년 전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자존심을 구기는 때가 많았다.

차두리는 오른쪽에서 측면 공격에 가세하고 수비 때는 상대의 날개 공격수 등을 방어하는 풀백으로 뛰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포함해 선수생활 초기에는 부친처럼 스트라이커로 뛰었으나 풀백이 더 낫다고 판단해 더 많은 시간을 수비수로 보냈다.

차두리는 서울에서도 풀백으로 뛰었다. 그는 입단 후 얼마 동안 공백 때문인 듯 과거의 명성과 달리 경기력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수비수들의 압박을 벗어나지 못해 자주 당황했고 볼 터치는 둔탁했으며 크로스는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날아가는 듯했다. 

한 시즌을 지날 무렵이 돼서야 차두리의 기량은 프로 선수답게 조금씩 공백기를 보내기 전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이런 회복 속에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앞둔 작년 2월 차두리를 대표팀에 발탁했다. 

차두리는 2011년 11월 레바논과의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에 출전한 이후 무려 2년 3개월 만에 대표팀 승선했다. 

그러나 둔탁한 볼 터치와 끔찍한 크로스 등으로 기대에 못미쳤다.

오히려 경험이 부족한 선수단을 도우려고 합류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차두리는 "많은 나이에 경쟁기회가 주어져 기쁘다"며 "주전경쟁이 대표팀의 경쟁력 향상에 긍정적이니 경쟁자들과 선의의 부담을 주고받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차두리는 기량을 증명해야 할 홍명보호의 그리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부상을 당했다. 

FC서울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경기에 나섰다가 왼쪽 허벅지 뒷근육을 다쳐 대표팀에 합류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홍 감독은 차두리 대신 다른 선수를 불러들였고 곧 이어진 최종명단 발표 때에도 차두리를 제외했다. 

차두리는 K리그 클래식의 휴식기를 틈타 월드컵 기간에 국내 지상파 방송사의 해설자로 나섰다. 

시즌 후반기 출전에 차질이 없도록 몸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서울 구단에 약속한 뒤에 해설자로서 장도에 나섰다. 

월드컵 본선 현장에서 중요한 경기들을 직접 관전하고 돌아온 차두리는 대오각성한 것처럼 경기력이 향상됐다. 

지난 시즌 후반기 K리그 클래식에서 차두리와 비교할 활약상을 펼친 풀백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용수 감독은"차두리가 말년에 전성기를 보내는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부친을 닮아 천부적으로 타고난 튼실한 골격과 운동능력은 두말하면 잔소리.

압박을 벗어나는 판단력이 신속하고 정확해졌고 멋진 드리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으며 공간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크로스에는 섬세함이 돋보였다.

차두리는 새로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띄었고 대표팀에서도 기대 이상의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올해부터 다른 생활을 하겠다며 또 다시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차두리는 작년 월드컵 해설에 나서기 전에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다.

꿈이 커야 결과도 크다며 어차피 감독이 될 것이라면 독일 최고의 구단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 되겠다는 포부까지 털어놓았다.

팬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불발한 첫 은퇴 계획에 이어 두 번째 은퇴 계획은 향상된 경기력 때문에 차질을 빚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요한 아시안컵 때까지만 뛰고 은퇴하라고 차두리를 설득해 약속을 얻어냈다. 

최용수 감독도 작년을 끝으로 은퇴하려던 차두리에게 남아서 선수단을 더 도와달라고 붙잡기 시작했다. 

서울 구단은 작년 말에 보도자료를 통해 차두리와 1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슈틸리케 감독과의 약속이 끝나가는 차두리는 팬 이제 들로부터 은퇴 계획을 철회해달라는 탄원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서명운동까지 펼쳐지고 있다. 

지난 22일 멜버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아시안컵 8강전에서 보여준 폭발적, 인상적 장면에 이어 나타난 신드롬이다. 

차두리는 그 경기 연장전에서 그라운드를 60m가량 질풍처럼 질주, 상대 수비수를 '넛메그'로 농락했다. 

넛메그는 가랑이 사이로 볼을 빼는 기술로 수비하는 선수가 경기 중에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수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질주에 이은 크로스는 정확하게 공격수 손흥민(레버쿠젠)에게 전달돼 추가골로 이어졌다.

저런 선수가 왜 브라질 월드컵에서 해설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방송 해설자의 말은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의리 축구 논란과 함께 졸전으로 막을 내린 브라질 월드컵 때문에 좌절한 팬들은 이번 대회에서 차두리의 활약상을 지켜보면서 더욱 큰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태극마크를 반납하기까지 두 경기를 남겨둔 차두리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은 팬, 현장 지도자, 전문가들이 똑같다. 

최용수 감독은 차두리가 선수단의 사기를 높이고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하는 '해피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리더라고 평가했다. 

경기력은 둘째 치고 선수들의 모범이 되기 때문에 더 오래 클럽에 남아주기를 원한다는 설명이었다. 

슈틸리케 감독도 독일어가 유창하고 동료와의 관계가 원만한 차두리가 최고 베테랑으로서 코치진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잘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차두리의 대표팀 생활은 이미 그대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손흥민은 열두 살이 많아 띠동갑인 차두리를 대표팀에서 '삼촌'으로 부르며 따르고 있다.

그는 우즈베크전이 끝난 뒤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는 리더인 삼촌에 대한 애정과 자랑을 잔뜩 늘어놓았다. 

"연장전에 제가 최전방에 나섰는데 많이 뛰지 말고 체력을 아꼈다가 한 방을 노리라고 삼촌이 조언했어요. 그대로 됐죠. 제가 정말 많이 기대는 선수가 삼촌입니다. 약속도 했어요. 두리 형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기 전에 꼭 좋은 선물을 드리겠다고요. 그 약속(아시안컵 우승)에 조금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더 보여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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