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대 의학박사인 김병곤 트레이닝 코치가 류현진(32·토론토 블루제이스)으로부터 전담 코치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건 지난해 12월이다.
류현진은 김용일 전 트레이닝 코치가 개인 사정으로 떠나자 새로운 전담 코치를 물색했고, 2013년 비시즌에 도움을 받았던 김 코치를 떠올렸다.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류현진이 2019년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차지한 데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4년 8천만 달러의 대형 계약을 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2020시즌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 선수였다.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전담 트레이닝 코치의 역할과 무게감은 상당했다.
2020년은 류현진에게도, 이 분야 권위자인 김병곤 코치에게도 도전의 시간이었다.
올 시즌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한 김병곤 코치를 만난 건 2주간의 자가격리가 끝난 21일 점심이었다.
김 코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편하게 쉰 2주였다"며 환하게 웃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는 한 마디였다.
◇ 코로나19 시국에도 멈추지 않은 훈련…"쉰 날은 딱 하루, 토네이도 불었을 때"
류현진은 KBO리그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 노력형 선수보다는 천재형 선수에 가까웠다.
훈련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2013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뒤 첫 스프링캠프 훈련에서 러닝 훈련을 하다가 낙오를 한 건 유명한 일화다.
그러나 김병곤 코치는 "그때의 류현진과 지금의 류현진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김 코치는 "지난 1월 일본 오키나와 개인 훈련 때부터 류현진과 함께 훈련했는데, 훈련과 몸 관리에 임하는 태도가 매우 진지했다"며 "개인 훈련을 함께했던 친분 있는 선수들에게 직접 웨이트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현재 류현진이 소화하는 훈련량은 국내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토론토 구단의 스프링캠프가 문을 닫고 개막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을 때도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임시 거처인 플로리다 더니든 저택 인근 거리에서 러닝 훈련, 체력 훈련과 캐치볼 등 다양한 훈련을 했다. 훈련 상대가 없어 김병곤 코치가 캐치볼을 받기도 했다.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류현진은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김 코치는 "류현진이 훈련을 쉰 날은 딱 하루였다"며 "토네이도가 불어 밤을 새웠던 날을 제외하면 단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했다"고 말했다.
◇ "류현진은 위대한 선수, 시즌 초반 흔들리더니 바로 감각 찾아"
류현진은 만발의 준비를 했지만, 메이저리그 개막 일정이 꼬인 탓 때문이지 올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첫 경기였던 7월 25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서 4⅔이닝 3자책점, 7월 31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경기에서 4⅓이닝 5자책점을 기록했다.
직구 구속은 시속 140㎞대 초반에 그쳤고, 제구도 흔들렸다.
김병곤 코치는 "아찔했던 순간"이라고 곱씹었다.
김 코치는 "사실 당시 류현진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면서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더욱더 힘든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 코치는 "류현진도 많이 고민했는데, 스스로 밸런스를 잡아가더라. 정말 좋은 선수라는 것을 그때 한 번 더 느꼈다"고 전했다.
류현진은 세 번째 선발 등판 경기였던 8월 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5이닝 무실점 호투로 첫 승을 거뒀고,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정규시즌을 마쳤다.
류현진은 2020시즌을 건강하게 시작해서 건강하게 마쳤다.
김 코치는 류현진이 탬파베이 레이스와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시리즈(ALWC·3전 2승제) 2차전에 등판한 것도 건강 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김 코치는 "몸 상태가 나빠 1차전에 등판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이제 필요한 건 에이징 커브에 대비하는 것…올겨울이 변곡점"
김병곤 코치가 내년 시즌에도 류현진 전담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김 코치는 "출강 등 개인 일정 문제가 있는데, 일단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코치는 내년 시즌을 위한 류현진 맞춤 훈련 프로그램은 다 짜놓은 상태다. 김 코치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에이징 커브(나이가 들면서 기량이 떨어지는 현상)다.
김병곤 코치는 "어찌 보면 류현진에겐 부상에 대비하는 것보다 에이징 커브를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에이징 커브에 들어가게 되면 파워가 떨어지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훈련 프로그램을 바꿔야 한다"고 전했다.
김 코치는 "이제 훈련 방식은 굵고 짧게 하는 것, 즉 하드 트레이닝으로 수정해야 한다"며 "한 가지 예로 지금까지 러닝 훈련을 80-90%의 힘으로 달렸다면, 앞으론 100%-110%의 힘으로 아주 세게 달려 하체를 강화해야 에이징 커브를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화하기 쉽지 않은 강도 높은 훈련이다. 그러나 김병곤 코치는 타협의 여지를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코치는 "류현진은 지금까지 해왔던 훈련 프로그램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훈련 프로그램을 바꿔야 할 때다. 류현진을 설득하면서 에이징 커브를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곤 코치는 토론토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도 전했다.
그는 "KBO리그의 트레이닝 시스템은 발전하고 있지만, 그 발전 속도는 메이저리그가 오히려 더 빠르다. 두 리그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며 "메이저리그는 선수 트레이너, 재활 트레이너, 체력관리, 영양 담당, 멘털 관리 등으로 세분화해 선수를 관리한다. 전문가들이 선수를 관리하고 데이터를 쌓아 경기 결과로 도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수 출전 여부도 수석 트레이닝 코치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져야 한다"며 "책임 소재가 분명하고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선수들은 최고의 환경에서 경기를 뛸 수 있다. KBO리그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