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복궁야경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11.28.2022 11:21:33  |  조회수: 1235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참  축복을 많이 받은 땅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시 한복판에 여러개의 궁을 가지고 있고,뒤에는 북한산이 병풍처럼
들어서 있고,앞으론 한강이 말없이 흐르는 곳이다.

한국사람들은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근면하고 심성이 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국을 떠나 이국땅 미국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해보고 느낀 사실이다.

이런 나라에 요물들(?)이 갑자기 득세하여 신탁에 의지하기 시작하여                                                                   
 
국가의 앞날을 기약할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잘못 된 것은 바로 고쳐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래 방기하면 그대로 굳어져 아예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고려의 삼은 중 '야은 길재'가 허망하게 망한 국가를 보고 한탄하며
지은 시를 옮겨 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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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한마당  11.28.2022 11:24:00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시조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작자는 남구만(南九萬·1629~1711).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 당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효종 7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고, 숙종 때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법을 받들어 사사로움이 없었고 언제나 붕당(朋黨)을 염려하여 공의(公議)를 따랐다.

    1701년 희빈 장씨를 가볍게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숙종이 사사(賜死)하기로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 뒤 유배, 파직 등의 파란을 겪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나 1707년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 『약천집』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가 전하고, 문하에 글 배우는 선비가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조로는 이 작품이 유일하게 전하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 한마당  11.28.2022 11:25:00  

    '동쪽 창문이 밝았느냐 종달새가 우짖는다/ 소를 먹일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냐/ 재 너머 있는 이랑이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는가'로 풀린다. 경쾌한 아침, 주인 영감은 일찍 잠이 깼는데 소 먹일 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농촌의 봄은 할 일도 많은데 늦잠을 자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