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웰 사건은 1947년 7월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Roswell)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때 거기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증거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미군은 처음엔 UFO라고 발표했다가 기밀리에 띄운 실험용 기구가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UFO 추종자들은 외계 생명의 우주선이 추락한 것을 미국 정부가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논란은 대중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로즈웰 사건은 UFO로 주장되는 가장 잘 알려진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로즈웰 사건이 다시 수면에 올라온 것은 1970년대 말 은퇴한 제시 마르셀 중령이 UFO 연구가인 스탠튼 프리드먼에게 자신이 회수했던 잔해가 외계의 것이라고 믿는다고 인터뷰한 때였다.[1] 이에 UFO 연구가들은 점점 구체적이고 다양한 다수의 음모론을 내놓았는데 하나 이상의 UFO가 불시착했고 외계인을 군에서 확보했으며 이후 사건을 은폐했다는 등의 주장을 펼쳤다.
1994년 미국 공군은 추락한 물체는 프로젝트 모굴에서 시행했던 핵실험 감시 풍선으로 확인되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2][3] 그리고 1997년 두 번째 보고서에서 "외계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아마도 높은 고도에서 떨어진 충돌실험용 인체 모형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계속 이어졌고 로즈웰 사건은 대중매체 등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 사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철저하게 조사되었으며, 가장 완전하게 폭로된 UFO 주장"이라 묘사된다.[4]
뉴멕시코주의 도시인 로즈웰은 이 사건을 활용하고 있는데 시의 공식 입장에는 작은 초록 인간이 들어가 있으며 이곳에는 수많은 UFO 명소, 이벤트, 동상과 모형들이 있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広島・長崎原子爆弾投下, Atomic bombings of Hiroshima and Nagasaki) 혹은 일본으로의 원자폭탄 투하(日本への原子爆弾投下) 사건은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승기를 잡은 미국이 일본 제국에게서 항복을 받아 내기 위해 일본 제국의 도시인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건으로, 현재까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핵무기를 실전에 투입한 사례다.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이 사건에 대한 윤리적, 법적, 군사적 논란은 오랜 기간 학계에서 양극화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원자폭탄의 사용이 정말로 필요했는지 여부 같은 근본적인 문제는 수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학계를 분열시키고 있다
원래 맨해튼 계획은 독일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우란프로옉트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 영국 공동계획 하에 추진된 것이지 실제로 핵 공격을 수행하기 위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당대의 핵무기는 아직 시험조차 되지 않은 신병기였으므로 잘못 투하하였다가 불발이라도 나면 오히려 추축국에게 기술만 고스란히 넘겨주지 않을까 우려되었다. 기껏해야 일본군의 주요 거점이었던 트럭(Truk. 현재의 미크로네시아 연방 추크 주) 제도에 투하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을 뿐이었는데 이것도 해상에 투하해야 핵기술 회수와 습득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편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에서 점차 패색이 짙어지던 일본 제국 수뇌부는 소련을 중재자로 하는 화평 공작을 펴고 있었다. 특히 식민지로 삼고 있던 한반도, 중국 동부, 만주, 사할린 등을 깔끔히 포기하고 당장 항복하자는 고노에 후미마로와 같은 강경파는 이미 1944년부터 항복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