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us Blossom: 연꽃
소리가 들립니다.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끝자락과 그 소리의 시작은 많이 닮았습니다.
지나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머금고, 마치 이 소리 이전에도 소리가 계속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드디어 또 하나의 봄이 찾아왔고, 눈 부신 봄 햇살에 마음은 파르르 설렙니다.
무시무시한 놀이 기구에서 떨어질 때 처럼 가슴이 울렁거리더니, 이내 첫사랑을 마음 속에 접어야 했던 그 날처럼 마음이 아립니다.
또 하나의 봄은 다시 시작됐고, 온 마음을 다해 오래된 그 상처들과 화해해 보려 합니다.
하지만 집요한 여름 햇살같은 고통이 끝없이 쫒아옵니다.
뼈 속 깊은 곳까지 어둠이 드리워질 즈음, 거친 벌판에 홀로 내동댕이 쳐집니다.
고독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가 싶더니, 그 거친 벌판에 비바람까지 쳐댑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그 벌판에서 온 몸으로 비바람을 받아냅니다.
점점 더 거칠어지던 비바람은 이내 거나한 한풀이 춤판을 벌입니다. 나그네는 온몸 구석구석, 마음 한 올 한 올 지치고 지쳐서 꺼억꺼억 울어 버렸습니다.
한 동안 그렇게 있었습니다.
어느새 거친 비바람은 거짓말처럼 사그라졌고, 입고 있던 옷이 무겁습니다.
그래야 겠습니다.
훌훌 벗어던지고 맨발로 뛰어나가야 하겠습니다.
비바람이 멎은 그 곳엔 파릇한 새싹이 돋아있었습니다.
나그네는 맨발로 걷고 또 걷습니다. 그는 비로서 지나온 그 길을 고개 돌려 돌아봅니다.
알아 버렸습니다.
그 것은 꿈과도 같고 아지랭이와도 같은, 다름아닌 그의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다시금 또 하나의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인생을 애잔하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관조한 이 명곡은 빌리 스트레이호른 (Billy Strayhorn) 이라는 재즈 작곡가의 'Lotus Blossom' (연꽃) 이라는 작품입니다.
빌리 스트레이호른 (Billy Strayhorn) 은 그의 재능과 역량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그림자였습니다. 듀크 엘링턴(Duke Elington)이라는 재즈 거장의 그림자였습니다.
듀크 엘링턴은 빅 밴드의 창시자 중 하나이자, 미국 재즈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었고, 그와 그의 빅 밴드는20 세기 전반, 재즈의 대중적 인기를 이끌며 그 무대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빌리 스트레이호른 (Billy Strayhorn) 역시 듀크 엘링턴과 함께였고, 듀크 엘링턴과 그 밴드를 위해서 많은 작곡과 편곡을 했습니다. 이른 나이에 식도암에 걸려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는 늘 듀크 엘링턴의 곁을 지키며30 년 넘게 함께 합니다.
그는 그림자 역활을 충실히 했습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는 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해살이풀인 연꽃은 때 늦은 7월에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빌리 스트레이호른 (Billy Strayhorn) 과 연꼿은 닮았습니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가 누군가의 그림자로써 한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마치 진흙 속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하는 연꽃이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그는 이 곡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꿈 같은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그래서 너무 애잔하고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서.
빌리 스트레이호른 (Billy Strayhorn) 이 이 곡을 쓴 것은 우연일까요?
그림자인 그만이 쓸 수 있었던 곡, 그리고 진흙만이 틔울 수 있는 꽃,
그가 이 곡을 쓴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이제쯤은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군요.
삶이 슬프고 괴로웠던 것이 '그림자' 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림자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말입니다.
이제 7월입니다. 연꽃이 흐드러지게 필 겁니다.
빛 보다 찬란한 그림자의 삶,
기꺼이 살아보시지는 않으시겠습니까?
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