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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일 만에 승리 류현진, 이번엔 체인지업이 아닌 커브였다

등록일: 05.01.2017 13:52:55  |  조회수: 300

 


'이정표를 세웠다'고 했다. 류현진(30·LA다저스)의 말이다. 그럴 만한 경기였다.

류현진은 1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필라델피아와의 홈경기에서 시즌 5번째로 선발 등판했다. 최고의 피칭이었다. 5⅓이닝을 던지며 삼진을 무려 아홉 개나 잡아냈다. 안타 세 개와 볼넷 세 개로 필라델피아 타선을 1실점으로 묶었다. 그리고 승리 투수. 시즌 첫 승이자, 지난 2014년 9월 1일 샌디에이고전(7이닝 1실점) 이후 973일 만의 승리였다. 경기 뒤 류현진은 "오늘은 확실히 이정표를 세운 날이다. 거의 1000일 만에 승리 기록을 얻었다"고 감격했다.

어깨와 팔꿈치 수술로 긴 재활을 거친 류현진은 스프링캠프에서 재기 가능성을 보여주며 선발진에 합류했다. 앞선 네 차례 선발 등판에선 모두 패전 투수가 됐다. 하지만 투구 내용은 점차 좋아졌다. 코칭스태프와 현지 언론의 평가도 후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등판에선 모두 95구·6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네 번째 등판이던 25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선 시즌 첫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다.

상승세 속에 치른 다섯 번째 등판. 아직 구위는 부상 전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빠른공 평균 구속은 시속 89마일(143lm) 수준이었다. 1회에도 시속 90마일이 넘는 공은 많지 않았다. 앞선 샌프란시스코전(최고 93마일·평균 90마일)보다 구속은 확연히 떨어졌다. 하지만 스피드는 전부가 아니었다.

노련미가 돋보였다. 상대 노림수를 역이용했다. 류현진은 샌프란시스코전에서 투수구 96개 중 체인지업을 40개나 던졌다. 체인지업은 원래 류현진의 주무기지만 평소보다 구사율을 10%p 이상 높였다. 하지만 1일 경기에선 체인지업을 아꼈다. 이날의 위닝샷은 커브였다. 류현진의 커브는 부상 전에 비해 오히려 떨어지는 변화가 더 좋아진 구종이다.

삼진 9개 중 네 개를 커브를 던져 잡아냈다. 체인지업이 세 개, 빠른공과 슬라이더가 하나씩이었다. 체인지업을 의식한 필라델피아 타자들의 역을 찔렀다. 류현진이 2013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 삼진을 9개 이상 잡아낸 경기는 이전까지 6번에 불과했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1회초 선두 타자 세사르 에르난데스에게 우익수쪽 3루타를 맞았다. 다저스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의 타구 판단과 포구가 아쉬웠다. 이어 후속 프레디 갈비스에게 바로 적시타를 허용했다. 볼카운트 1-1에서 던진 81마일(130km) 바깥쪽 체인지업이 중전 안타로 이어졌다. 후속 대니얼 나바도 풀카운트에서 낮은 코스 체인지업을 기다려 볼넷을 얻어냈다.

세 타자 연속 출루. 하지만 류현진은 이내 답을 얻었다. 필라델피아 타자들은 140km대 초반 구속의 직구에도 스윙 타이밍이 늦었다. 체인지업을 기다렸다는 얘기다. 류현진과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은 빠른 대응을 했다. 자칫 초반 승기를 완전히 내 줄 분위기에서 4번 마이켈 프랑코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볼카운트 2-2에서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던진 게 먹혔다. 필라델피아 세대 교체 대표 주자인 프랑코는 팀 내 가장 많은 홈런(4개)과 타점(21개)를 기록 중인 타자다.

이후 류현진의 투구 패턴은 예측불가였다. 5번 애런 알테르는 바깥쪽 빠른 공으로 뜬공 처리했고, 후속 마이클 손더스는 몸쪽 체인지업을 던져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무실점과 탈삼진 행진은 2회부터 그가 마운드를 내려갈 때까지 이어졌다. 2회초 2사에서 상대한 투수 닉 피베타와, 3회 선두 타자 에르난데스는 커브를 결정구로 삼진을 잡아냈다. 3회 2사 1루에서 상대한 프랑코에겐 앞서 던진 슬라이더가 아닌 체인지업으로 다시 삼진을 잡아냈다.

4회도 현란했다. 1사에서 상대한 좌타자 손더스에게 풀카운트에서 바깥쪽 91마일(146km) 빠른 공으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속구도 통했다. 후속 우타자 토미 조셉을 상대로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 바깥쪽 커브로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다양한 구종을 섞어 승부를 겨루는 류현진의 투구에 필라델피아 타자들은 혼란스러워했다.

5회까지 실점 없이 순항한 류현진은 6회 선두 타자 갈비스에게 볼넷을 내줬다. 후속 나바를 체인지업으로 삼진 처리한 뒤 구원 투수 세르지오 로모와 교체돼 이날 경기를 마쳤다. 구원 투수는 후속 두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류현진의 승리 요건을 지켰다.

다저스 타선은 1회말 무사 1·3루에서 저스틴 터너가 좌전 적시타를 치며 동점을 만든 뒤, 2회 1사에서 크리스 테일러의 좌월 솔로 홈런으로 역전에 성공했다. 류현진이 마운드를 내려간 6회에는 스코어 2-1에서 앤드류 톨스가 스리런 홈런을 치며 점수 차를 벌렸다. 구원진이 필라델피아 추격을 2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확정 지었다. 

경기 뒤 류현진은 "1승을 거둘 때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의미가 크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팀이 이길 수 있는 투구를 하겠다"며 승리 소감을 밝혔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도 "1회 위기를 잘 넘겼다. 이전 등판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아지는 시점이다"며 만족해했다. 다저스는 현재 6인 선발 로테이션을 가동 중이다. 1일 호투로 류현진은 선발진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