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스 캐년은 골짜기라기보다 침식이 빚은 원형 극장이다. 수천만 년 전 호수 바닥에 쌓인 클래런 층의 석회암을 서리와 빗물이 오랜 세월 갉아 내어 기둥으로 남겼고, 그 틈마다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화면은 그 시간을 설명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능선에서 골짜기로, 먼 데서 가까이로, 다시 다리와 오솔길로 내려앉을 뿐이다. 그 사이 주황과 흰빛, 짙은 초록과 맑은 남색이 같은 호흡으로 자리를 바꾼다. 21초와 149초 무렵의 짧은 암전은 악보의 쉼표처럼 장면을 끊어 준다.
〈짐노페디〉는 고대 그리스 청년들의 무용 제전에서 이름을 따왔지만, 음악은 좀처럼 걸음을 서두르지 않는다. 왼손의 낮은 화음 위에서 오른손 선율이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 되풀이가 후두의 되풀이와 맞물린다. 바위는 늘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듯하지만, 빛이 옮겨 갈 때마다 그림자의 깊이가 달라진다. 멀리서는 군대처럼 열 지어 서 있던 기둥들이 가까이 다가가면 저마다 다른 상처와 흰 모자를 드러낸다.
이 영상은 관광 안내가 아니다. 장소의 이름과 곡의 번호만 남기고 해설과 인물은 덜어 냈다. 남는 것은 깎인 돌과, 그 사이를 지나가는 느린 선율이다. 제목의 ‘침묵’은 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말이 빠진 자리에 풍경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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