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내 자신의 색채로 내가 그린다.

글쓴이: 만두의객석  |  등록일: 01.24.2026 13:54:38  |  조회수: 93
세상은 내 자신의 색채로 내가 그린다

— 퍼즐 구멍 속의 진실: 프로파간다의 시대, 깨어있는 자의 캔버스 —

한 장의 그림이 있다.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고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대리석 조각상, 기둥과 부조, 오래된 건축의 권위가 화면 전체를 점령한다.

그러나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그림은 단지 ‘고전’이 아니다.
그 위에는 퍼즐 조각 모양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
그리고 그 구멍들 사이로 전혀 다른 세계가 고개를 내민다.

현대의 포스터, 강렬한 색채, 인간의 얼굴, 광고의 언어, 시대의 소음.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작품은 “아름다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폐”를 말하려는 그림이라는 것을.

이 그림의 장치는 아주 정확하다.
과거가 현재를 덮고, 현재가 과거를 덮는 구조.
겹겹이 포개진 시대의 껍질은 진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존재한다.

1. 퍼즐은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다

퍼즐이란 원래 조각을 맞추어 전체를 완성하는 놀이지만, 이 그림의 퍼즐은 완성되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은 퍼즐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전체를 보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조각을 본다.
뉴스의 조각, 댓글의 조각, 누군가 편집한 문장의 조각.

사람들은 그 조각을 ‘사실’이라고 믿지만, 조각 자체가 이미 의도를 품는다.
조각을 쥔 자가 전체를 만든다.

그림 속 고전 건축과 조각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역사이며 전통이고 권위다.

사람들은 그 권위를 보면 안심한다. 오래된 것은 진실일 것 같고, 대리석은 변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심이야말로 덫이다.
권력은 언제나 과거의 권위를 빌려 현재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현재의 실패를 과거의 운명처럼 포장하며 책임을 흐린다.
이렇게 해서 역사는 ‘기록’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이 그림은 그 도구를 시각으로 보여준다.

대리석 같은 과거의 표면은 평온하지만, 그 표면에 뚫린 구멍들 속에서는 현대의 얼굴과 색채가 숨 가쁘게 움직인다.
즉 이 작품은 말한다.

“권위의 표면 아래에서 현실은 끓고 있다.”

2. 프로파간다는 늘 친절한 얼굴로 온다


프로파간다는 총을 들고 오지 않는다.

그것은 정의를 말하고, 안정과 질서를 말하고, 나라와 공동체를 말하며, 사람들의 불안을 달래는 척 다가온다.
그러나 그 달램은 치료가 아니라 마취다.

마취된 사람은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살고 있으나, 삶의 방향은 이미 타인이 잡는다.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의 세상은 결국 타인의 조정으로 끌려간다.
진실은 정면에 있지 않다.
진실은 늘 ‘틈’에 있다.

뉴스의 빈칸, 역사 교과서의 생략, “왜?”라는 질문이 지워진 자리.
그 틈 속에 진짜 현실이 존재한다.

그래서 권력은 늘 덮는다.
과거로 현재를 덮고, 현재로 과거를 덮고,
그 사이에서 불편한 진실을 가리고,
결국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다.

아전인수(我田引水).

물길은 언제나 자기 논으로만 흐르게 만든다.

3. 정치에 무관심하면, 정치는 당신을 관리한다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을 끊으면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순간, 정치는 더 깊이 당신의 삶 안으로 들어온다.
당신의 노동을 규정하고, 세금을 정하고, 의료와 주거의 조건을 바꾸고,
당신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두려워할지까지 설계한다.

정치를 외면하는 순간, 삶은 편집당한다.

그림 속 고전 조각상이 마치 완성된 세계처럼 화면을 덮고 있는 것은
바로 그 편집의 상징이다.

‘이미 결정된 세계’라는 착각.
‘원래 그런 세상’이라는 무기력.
‘나는 모르겠다’는 항복.

그러나 구멍 속의 현실은 묻는다.

“정말 원래 그랬는가?”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왜 너는 질문을 멈추었는가?”

4. 내 세상은 내 캔버스다

나는 이 그림을 통해 가장 선명한 경고를 읽는다.

깨어있는 사람만이 자기 세상을 가진다.
깨어있지 않으면, 나는 결국 남의 세상에 끌려간다.
남이 짜놓은 판 위에서 남이 설계한 감정을 소비하며,
남이 정한 분노와 남이 정한 공포에 이끌려
내가 아닌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선언한다.
내 세상은 내 캔버스다.

캔버스를 남에게 내어주는 순간
그들은 내 삶 위에 그들의 색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 삶을 살면서도
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퍼즐을 맞추는 손은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나여야 한다.

맺음말: 퍼즐 구멍을 바라보는 눈

이 그림이 위대하게 말하는 것은 단순하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표면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틈을 보고 있는가.

진실은 언제나,
가장 아름다운 곳이 아니라
가장 불편한 곳에 있다.

그리고 깨어있는 사람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그들은 퍼즐 구멍 속을 들여다보고
조각들을 모아
자기 삶을 스스로 완성한다.

내 세상은 내 자신의 색채로 내가 그린다.

-만두의 객석, 권두안 J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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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만두의객석  1일 전  

    사회의 정교한 장치를 비판한 작품이다.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그 실체를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