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여대상 살인사건, 억울한 택시기사, 뻔뻔한 경찰

글쓴이: 회원정보  |  등록일: 06.04.2013 20:00:32  |  조회수: 2239
키가 170㎝를 조금 넘어 보이는 그는 수척했다. 담담한 척하며 말문을 열었지만, 괴로워하는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한겨레>는 대구 여대생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억울하게 몰려 6시간 동안 경찰에 체포됐다가 풀려난 택시 운전기사 ㅇ(30)씨를 4일 저녁 7시께 만났다. 이 사건의 현장검증이 있던 날이다.

ㅇ씨가 경찰에 붙잡힌 것은 지난달 31일 저녁 8시께 자신이 사는 아파트 앞에서였다. 담 배를 피우러 나왔다가 잠복중이던 경찰에 긴급체포돼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이 제시하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피해자를 택시에 태웠다는 게 체포 이유의 전부였다. 그렇게 연행돼 간 곳은 대구 중구 대구시민회관 맞은편 역전치안센터였다.

“잠든 여학생을 태우고 가는데 중간에 어떤 남자가 남자친구라며 택시에 탔어요. 다른 택시를 타고 쫓아온 거였죠. 방향을 돌려 달라고 해서 대구 북구 산격동에 여학생과 함께 내려줬어요. 체포된 날 밤 10시께 조사를 받던 중 경찰관에게 사실 그대로 말했습니다. 내려준 곳 맞은편 모텔에 가는 것 같았으니 빨리 가서 확인해 보라고까지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모텔로 가지 않았다. 돌아온 말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진술이나 해라’였다고 한다. 경찰은 “그럼 시신 유기는 당신이 하지 않은 거고 성폭행만 한 거냐”고 추궁했다. 경찰은 증거 하나 없이 ㅇ씨와 지루한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모텔로 향했다고 한다. “가보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겠다”는 말이 들렸다.

경찰이 모텔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확인하는 순간 ㅇ씨의 혐의는 바로 벗겨졌다. 여대생을 끌고 모텔에 들어간 것은 피의자 조아무개(25)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ㅇ씨는 바로 풀려나지 못했다. 새벽 2시까지 수갑을 차고 있어야만 했다. 택시에 태웠던 사람이 조씨가 맞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나서야 ㅇ씨는 풀려났다.

“왜 미리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13시간을 일하고 집에 돌아와 뻗어 잠자기 바쁜 게 택시 운전기사예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건에 대해 상세히 알고 신고를 하나요. 25일 발생한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이틀이 지난 27일 오후 5시가 다 돼서였어요. 포털을 검색하다 우연히 뉴스를 봤죠. 그때도 ‘그냥 이런 사건이 있구나’ 했을 뿐이었습니다.”

체포될 당시 경찰관 30여명이 ㅇ씨의 집을 압수수색까지 했고, 그 모습을 이웃 사람들이 모두 지켜봤다. ㅇ씨의 삶은 억울하게 뒤틀리게 됐다.

“6시간 동안 조사를 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살인범처럼 보는 경찰관들의 눈빛이었어요. 풀려났지만 동네 주민도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택시 운전도 더이상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아무런 증거도 없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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