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연기 압권 `미나리` (*스포일러 주의)

글쓴이: Value man  |  등록일: 02.11.2021 10:45:41  |  조회수: 838
한인 2세 리 아이삭 정(Lee issac Chung/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Minari)'에서 할머니 순자(윤여정, Youn Yuh-jung)는 산 속 개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미나리 앞에서 외손자 데이빗(알란 김, Alan S. Kim)에게 이야기 해준다. "미나리 Wonderful!"


영화 '미나리'는 미국의 한인 이민자 이야기, 리 아이삭 정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다. '미나리'는 1980년대 7살 소년 데이빗은 리 아이삭 정 감독의 분신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한인 이민자에 국한되었다기보다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아칸소 깡촌에서 한국 채소 농장을 운영하려는 제이콥과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은 모니카는 종종 부부싸움을 벌인다. MINARI


영화는 제이콥(스티븐 연, Steven Yeun)과 모니카 이(한예리, Han Ye-ri) 부부가 딸 앤(노엘 케이트 조, Noel Kate Cho), 아들 데이빗과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남부 아칸소(Arkansas)의 시골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제이콥은 이삿짐 트럭을 몰고 앞장서 가고 있고, 모니카는 두 아이와 자동차를 운전하며 남편을 따라가고 있다.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민, 10여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했던 이 부부는 다시 남부의 시골 깡촌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좌절된 '아메리칸 드림'을 아칸소에서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그 꿈은 제이콥의 야망이었다. 제이콥에겐 밤엔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낮엔 채소농장을 운영하며 한인 식료품점에 팔려는 계획이 있다.


하지만, 이 가족의 새로운 시작은 출발부터 갈등이었다. 제이콥의 성공에 대한 야망과 모니카의 가족을 지키려는 소망이 부딪히며 부부싸움이 잦아진다.  아이들은 '또 시작된 부부싸움'을 피해 종이 비행기를 접어 "Don't Fight"라 써서 부모에게 날린다. 데이빗은 심잡음(Heart Murmur) 증상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고, 뛰면 안된다. 병원은 집으로부터 1시간이나 떨어져 있다. 낮에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는 모니카는 아이들을 돌보아주기 위해 한국의 친정 엄마, 순자를 불러온다. 순자는 고추가루, 멸치, 한약, 화투, 그리고 미나리 씨앗을 가져와 이들의 '바퀴 달린 집'(트레일러)에서 살게 된다.


손자는 침대 위, 순자는 방 바닥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손자는 할머니를 "과자 구울줄도 모르고, 한국 냄새 난다"며 거부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손주의 귀지를 파주고, 고스톱과 욕도 가르치고, TV 레슬링에 열중하며, 손자와 산책하며, 냇가에 미나리를 심는다. 할머니가 "Pretty Boy!"라고 이뻐하자, 손자는 "I'm not pretty, I'm good-looking!"하며 미운 7살 반항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소다(Mountain Dew) 대신 오줌으로 장난까지 친다.


손자와 순자 할머니의 동거. 리 아이삭 정 감독은 자신의 딸이 6살이 되었을 때 자신의 어린시절을 영화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MINARI


하지만, 어느덧 할머니와 손자 간에는 벽이 서서히 부서지고, 정이 쌓인다. 할머니는 다친 손자를 치료해주고, "You are a strong man"이라고 격려한다. 이에 손자는 할머니를 받아들이게 된다. 손자는 침대 아래로 내려가 할머니 곁에서 잠든다. 이들의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씨 가족은 어느날 교회에 갔다. 첫날 아이들은 백인 애들로부터 놀림 당한다. 데이빗에겐 "왜 얼굴이 넙적하냐?"고, 앤에겐 "칭챙총~" 놀린다. 아시아계 이민자 자녀들이 늘상 겪는 왕따와 인종차별 장면은 교회 단 한장면에 압축되어 있다. 하지만, 관객은 성장기에 그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할 수 있다. Less is More. 이민자들에게 차라리 외딴 농장 Garden of Eden의 트레일러가 안전한 셸터처럼 느껴진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찾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일상에 늘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MINARI


제이콥은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이웃의 광신도 백인 폴(Will Patton)을 고용해 채소 농장을 일군다. 하지만, 농업 용수 문제와 갑작스런 주문 취소로 위기에 봉착했다가 마침내 농장에서  가지, 고추, 호박 등 한국 채소 수확에 성공한다.


이즈음 순자 할머니는 뇌줄중으로 쓰러져 말을 잃게 된다. 어느날 이씨 가족은 달라스의 한인 식품점에 채소 배달하러 간다. 여기서 제이콥과 모니카의 갈등은 폭발하고, 결별 선언까지 나온다. 한편, 농장의 할머니는 쓰레기를 태우려다가 그만 채소 창고를 태우게 되는데...


앙상블 연기가 돋보인 '미나리'는 미배우조합(SAG) 최고상인 앙상블상,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후보에 올라 있다. 



영화 '미나리'는 성경 이야기의 우화처럼 보인다. 시나리오를 쓴 리 아이삭 정 감독은 성경 속의 인물들에서 착안해 캐릭터를 구상한듯 하다.


아빠 제이콥(야곱)은 야망에 찬 농사꾼이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이삭(아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야곱(제이콥)은 아이삭의 쌍둥이 아들이다. "아버지 이삭은 큰 아들 에서(에사우)가 사냥에 뛰어나고 그가 잡아오는 고기에 맛을 들여 에서를 더욱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천막에 머물러 자기를 돕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에서는 사냥꾼(유목민)이었고, 야곱은 목축업자(정착민)이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은 냉혈한 사업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물이다. 야곱은 자신을 해치려는 형을 피해 가나안에서 하란으로 피신한다. 어느날 밤 잠들었을 때 꿈 속에서 하늘에 닿은 사다리를 보았다(Jacob's Ladder), 그리고 꼭대기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미나리'에서 제이콥은 아칸소의 농장을 'Big Garden' 'Garden of Eden'에 비유한다. 지금 농장은 5에이커에 불과하지만, 꿈은 50에이커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병원이 1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바퀴달린 트레일러에서 살아야 한다. 모니카는 "약속한 게 아니잖아"하면서 제이콥에게 아칸소 농장이 '약속의 땅'이 아니라고 질책한다. 농장주 제이콥은 사업에 대한 야망 때문에 가족애를 포기한 인물이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성경에서 착안한듯한 캐릭터처럼 보인다. MINARI



오프닝 장면에서 아칸소로 이주하며 제이콥이 모는 트럭은 농업으로 성공을 거두려는 야망을 보여준다. 그 뒤로 아이들을 태우고 따라가는 모니카의 자동차는 다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면서 두 아이의 양육을 맡아야 하는 엄마의 책임감을 드러낸다. 카톨릭에서 모니카는 난폭하고, 권위적인 이교도 남편 파트리키우스와 결혼해 끊임없는 기도와 인내로 남편을 회개시켰다. 장남 아우구스티노 역시 방탕아였지만, 모니카의 기도와 희생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성녀 모니카는 어머니상의 모범이다. '미나리'에서 모니카 이는 남편과 갈등, 아들에 대한 연민으로 고뇌하는 인물이다. 



제이콥이 고용한 폴은 신령을 믿는 광신도다. 성경에서 폴(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예수를 믿는 자들을 박해하다가 회개해 신약성경의 방대한 부분을 기록한 신학자이자, 목회자이며, 선교사였다. 영화에서 폴은 바울의 외모(작은 체구에 양 눈썹이 붙었으며, 코가 좀 크고 머리는 벗겨졌으며 다리가 구부정하고 단단한 몸을 가진 은혜가 충만한 사람)에 어느 정도 닮아 있다. 폴이 거리에서 들고 가는 거대한 십자가는 끊임 없이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신화 속의 시지프스(Sisyphus)처럼 고단한 이민자들의 삶을 상기시킨다. 이민자들은 토네이도(바람), 물, 불 등 대자연과도 뿐만 아니라 피부색, 문화, 언어 장벽과 인종차별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



두 아이 데이빗과 앤도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다윗(데이빗)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 중 거구 골리앗을 죽인 후 이스라엘 왕국의 2대 왕에 올랐다. 다윗왕의 후손인 성녀 안나(앤)는 마리아의 친모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외할머니다.


어쩌면 순자 할머니는 제이콥의 '에덴 동산'에 나타난 현자(賢者, sage) 혹은 하나님(God)일지도 모른다. 제이콥은 가대한 농장을 위해 달리다가 뒤늦게 장모 순자가 심어놓은 개울가의 미나리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할머니는 농장에 나타나 지혜와 자비심으로 이씨 가족을 부둥켜 안았다. 이 가족이 결별의 위기로 치달았을 때 불을 질러 갈등을 해소한 현자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위기로 휘청거리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지주같은 인물이다.



데이빗은 할머니를 놀린 벌로 회초리를 들고 나타난다./ 순자 할머니는 음지, 습지에서 잘 자라는 미나리와 뱀의 사악함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MINARI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란다.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긴 식물이다. 아칸소 농장의 한국 채소가 한인 이민자의 자부심과 꿈의 상징이라면, 숲속 개울가의 미나리는 척박한 환경속에서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이름없는 이민자들의 삶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농장에서 꿈을 일구는 삶이 있다면, 깊은 산속 그늘에서 자라는 미나리의 삶도 있다. 신은 교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농장에도, 개울가에도 늘 함께 할 것이다. 


'미나리'는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이민자 가족의 고군분투를 따사롭게 그려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Burning)', 봉준호 감독의 '옥자(Okja)'로 친숙한 스티븐 연은 한인 가장 제이콥의 야망과 좌절, 이기심과 냉정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출신의 한예리는 가족을 보호하려는 모성과 비애를 섬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담아냈다.


뭐니뭐니 해도 '미나리'의 압권은 순자 할머니 역의 윤여정씨다. 플로리다에서 10여년간 이민자로 살았던 윤여정씨는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1)부터  임상수 감독의 '하녀(리바이벌)'(2010) 등 스크린과 TV 드라마에서 캐릭터 연기로 독보적인 존재감이 있는 배우다. 그는 '미나리'의 할머니를 인생의 고난을 헤쳐나오며 삶의 지혜를 몸소 터득한 지혜롭고, 자애롭고, 유머러스한 인물로 노련하게 소화했다. 순자 할머니는 영화사상 가장 잊혀지지 않는 할머니 캐릭터로 남을 것이다. 윤여정씨는 이미 미비평가 협회상, LA 영화비평가협회상, 미여성영화기자협회상을 비롯 지역 비평가협회상을 다수 수상했다. 미배우조합(Screen Actors' Guild)와 아카데미상도 기대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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