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그 빛과 그림자

글쓴이: 00  |  등록일: 12.30.2015 04:41:02  |  조회수: 1192
파리, 그 빛과 그림자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새 날을 맞는 연말연시에 파리를 생각해본다. 광주, 로스앤젤레스, 리옹, 앵커리지 등 빛의 도시들이 많지만 가장 많은 세계인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빛의 도시는 단연 파리다. 아름다운 빛의 도시 파리가 2015년에 세계의 이목을 세 번이나 집중시켰다.
  1월 풍자잡지 샤를리 에브도에서 13명이 사망한 테러사건 직후 3백만명 이상이 테러반대 시위를 하며,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겠다는 의미로 ‘내가 샤를리’ (Je Suis Charlie)라고 외쳤다. 11월에는 파리 및 인근지역 일곱 곳에서 발생한 동시다발 연쇄테러 사건으로 130여명이 사망하였다. 테러공격과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파리는 예정대로 12월에 제 21차 유엔 기후변화 회의를 개최하여 거의 200 개국의 정상과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파리 기후협정을 타결하였다.
  연말이면 갖가지 리스트를 만드는 전통을 따라, 한 도시가 경험한 빛과 그림자의 명암대비라는 리스트를 만든다면 파리가 1위를 차지할 것이다. 
  ‘파리의 자정’(Midnight in Paris),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배경으로 포스터를 만든  2011년 우디 앨런 각본,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지나면 새해가 오는 것같이 자정이 지나면 새 날이 온다. 이런 의미에서 자정은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넘어가는 시제의 총체적 표상이며 분기점이다. 영화에서 밤 12시만 되면 2009년 현재에 사는 헐리우드 영화작가인 주인공 길(오웬 윌슨)은 1920년대 재즈시대로 가서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거트루드 스타인 등 존경하고 사랑하는 선배 예술가들을 만난다.
  길은 자신이 마음 속으로 연모하는 피카소의 애인 아드리아나와 19세기 말 아름다운 시대 벨 에포크로 시간여행을 떠나 로트렉과 드가, 고갱을 만난다. 벨 에포크가 황금시대라며 재즈시대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 아드리아나를, 1920년대를 최고의 시대라고 믿는 길은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고갱은 자신이 사는 1890년대가 공허한 시대, 빈 껍데기같은 시대라며 미켈란젤로의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한다. 어느 시대 어느 공간에서 살아도 인간은 만족을 모르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파리의 자정’에서 파리는 공간의, 자정은 시간의 유동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파리가 최고의 도시라며 파리로 이사를 오겠다고 결심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공간이동은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과거를 아무리 그리워해도 시간이동은 불가능하다. 찬란한 기계문명도 생로병사라는 시간의 주기를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간 앞에서는 무력하다. 시간여행은 상상이나 환상, 공상 속에서나 가능하며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속성이 바뀌지 않는한 또 다른 시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운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영화 속 악몽처럼, 병원에 가도 항생제가 없고, 치과에 가도 노보케인이 없는 그런 불편하고 치명적인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막연히 옛날을 그리워하는 오류를 범하는 향수인 것이다. “향수는 현실부정이야.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부정이지. 황금시대 사고라는 이름을 가진 자기부정이야. 내가 살고있는 시대보다 다른 시대가 더 좋았으리라는 오류라고. 현재를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낭만적 상상력 속에 있는 오류인 거야” 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의 첫 3분 이상 동안 아무 대사없이 아침과 오후, 저녁과 밤, 맑게 개인 하늘과 비오는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파리가 자태를 뽐낸다. 앨런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 겸 색소폰 주자 시드니 베쳇의 ‘내 어머니를 만나신다면’이 색소폰과 클라리넷, 트렘펫 사이로 흐르는 가운데, 최고의 촬영기사가 최고의 각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루의 시간에, 제일 아름다운 빛을 잡아내서 찍은듯한 에펠탑, 몽마르뜨, 베르사이유 궁전, 루브르박물관, 세느강, 노틀담 성당 등이 보고있는 눈동자들을 빨아들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길은 현실세계로 돌아와 파리로 이사오겠다고 결심하면서, 취향과 사상의 공통점이 거의 없는 부유한 집안의 약혼녀 이네즈와 파혼을 선언한다. 파리의 밤거리를 걷다가, 자기처럼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음반가게  점원인 가브리엘과 커피 한 잔을 하자고 데이트를 청하며 영화가 끝난다. 이때 노래는 코울 포터의 ‘그래요, 사랑하며 삽시다’ (Let’s do it, let’s fall in love)이다.
  여운이 남는 이 영화를 생각하며, 또 두 번이나 치명적인 테러를 당한 뒤에도 인간의 미래를 위한 모임을 주도해 낸 파리를 생각한다. 우리는 살면서 늘  헤어지고 만나고, 또 만나고 헤어진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시간과는 작별하며, 현재와 미래의 시간과는 만나며 사는거다.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지난 1년과는 작별을 해야겠다. 우리는 늘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으니까. 파리가 끔찍한 테러를 두 번이나 당한 후에도 후세를 위한 위대한 환경보호 장치를 마련한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다 해도 우리 모두 앞을 보며 새해를, 그리고 미래를 맞아야 되겠다. 그래요,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사랑하며 삽시다.
 
앤디 김
번역가
Young Young 영화영어 강사
Email: youngmanandy@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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