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를 잘못 만난 여성 문인들, 허난설헌, 이옥봉,

글쓴이: nn  |  등록일: 08.04.2012 18:41:06  |  조회수: 8421
조선, 시대를 잘못 만난 여성 문인들, 허난설헌, 이옥봉,

독자 평 ; 두 여류 문인은 시대를 잘못만났다고 한다.
만일  현대에 태어났다면 조선 보다는 떳떳하게 인정을 받고 이름을 날렸을것이다.

그런데 가정적으로 행복 할수 있는가? 라는 화두는 여러가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시대이던지 남성은 자신들보다 똑똑한 여성은 원치를 않는다.
여성이 남성보다 똑똑해서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문학, 의학, 과학, 어느 분야에서든 눈부시게 활약을 하면
남성은 그런 여성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는다.

남성은 여성보다는 더 사회적, 지배적 dominant 본능을 타고 났다.
여성이 너무 똑똑한건 잘못이 아니요, 죄도 아니요, 정죄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국가적으로도 여성 인재가 많아지는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성이 너무 똑똑하거나 돈을 더 많이 벌어오면
자격지심 inferiority complex 을 느낄때가 있고  성생활도 하고 싶지 않다.

조선시대 이옥봉의 남편은 이옥봉이 다시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했는데
글을 모르는 불쌍한 백성을 도와주기 위해 그것도 글을 썼다는 이유로 내쫒아버렸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정말로 비정한 자식들이었다.
가정에 경제는 모두 아내에게 책임을 뒤집어 씨우고
정권을 잡기 위해 책만 붙들고 있었던 개 같은 넘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고려때는 사람차별, 여성차별이 조선보다는 심하지 아니했었다.

바보온달을 키운 평강공주와 같이  좋은 여성도 있다.
남자가 부족하면 그 앞에서 잘난 척 하기 보다는
남자를 키워주고,  사회적 체면을 유지해주는 여성이
정말로 똑똑한 여성이다.
독일이나 외국에서 일 하다가 미국으로 온 여성 중에는
남편보다 잘난 척 하는 여성들을 종 종본다
한국에서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벌어오고  남편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있는데
사람에 따라 가정 조건에 따라 그리 할수 밖에 없는 경우,
그것이 남편에게 언제나 스트레스가 되는건 아니다.

아내들이 알아야 하는건  아무리 똑똑해도 
남편 앞에서는 모지란것 처럼 사는게 정말로 똑똑한 여성이다.
그리고 그 겸손의 이익은 아내와 가정에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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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 許蘭雪軒 ]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여류시인.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허난설헌묘 ; 경기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경기기념물 제90호.
220 KB  http://dicimg.naver.com/100/800/38/80238.jpg

출생-사망 ; 1563 ~ 1589
본관 ; 양천(陽川)
호 ; 난설헌
본명 ; 초희(楚姬)
별칭 ; 별호 경번(景樊)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강릉(江陵)

주요작품  《유선시(遊仙詩)》,《빈녀음(貧女吟)》,《곡자(哭子)》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 년(1563년) 강릉(江陵) 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 15세의 나이에 김성립(金 誠立)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년)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참조항목 : 난설헌집,  여류문학,  원부사,  남동생-허균
역참조항목 : 허,  아버지-허엽,  조선시대의 한시,  허난설헌묘,
난설헌시집목판초간본,  빈녀음,  방외인문학,  악록집
[출처] 허난설헌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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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봉 [ 李玉峯 ]  출생-사망  ? ~ 1592(선조 25)
조선중기의 여류시인으로 중국에 까지 이름이 알려졌으며 여인의 시답지 않은 맑고 씩씩함이 느껴지는 시를 남겼다. 중국과 조선에서 출간된 시집에 허난설헌의 시와 함께 실려있다.
출생-사망  ? ~ ?
호 ; 옥봉
활동분야 ; 시인
주요작품  ;《영월도중》 《만흥증랑》 《추사》 《자적》 등

조선중기 16세기 후반인 선조 때 옥천(沃川) 군수를 지낸 이봉(李逢)의 서녀(庶女:소실의 딸)로 이후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어려서 부터 부친에게 글과 시를 배웠으며 영특하고 명민하여 그녀가 지은 시는 부친을 놀라게 하였다. 서녀의 신분이었기에 정식 중매를 넣을 수 없었으며 학식과 인품이 곧은 사람인 조원(趙瑗)의 소실(小室)로 들어가기를 결심하였다. 이에 부친 이봉은 친히 조원을 찾아가 딸을 소실로 받아줄 것을 청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조원의 장인인 판서대감 이준민(李俊民)을 찾아가 담판하고 비로소 받아들여졌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고 선조 때 승지에 오른 조원(趙瑗)의 첩으로 들어간 옥봉은 이후 다른 소실들과 서신으로 예술적 교류를 나누는가 하면 조원의 친구 윤국형(尹國馨) 또한 지사의 기개가 엿보이는 그녀의 시에 감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그녀가 써준 시 한편이 관가의 사법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필화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조원의 화를 사게되어 결국 친정으로 내쳐지고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전란 중에 사망하였다. 옥봉은 중국 명나라에까지 시명이 알려진 여류시인으로서 여인의 시 답지 않게 맑고 씩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중국과 조선에서 펴낸 시선집에는 허난설헌의 시와 그녀의 시가 나란히 실려 있다.
조원의 고손자인 조정만(趙正萬)이 남긴《이옥봉행적》에 그녀에 대한 행적이 일부 남아 있으며 《명시종(明詩綜)》,《열조시집(列朝詩集)》,《명원시귀(名媛詩歸)》등에 작품이 전하고 있다.
한 권의 시집(詩集)이 있었다고 하나 시 32편이 수록된 《옥봉집(玉峰集)》 1권 만이 《가림세고(嘉林世稿)》의 부록으로 전한다.
작품으로는 대표작《영월가는 길:영월도중(寧越途中)》 《만흥증랑(謾興贈郞)》
《추사(秋思)》 《자적(自適)》 《증운강(贈雲江)》 《규정(閨情)》 등이 있다.
참조항목 :  가림세고
역참조항목 :  조원, 몽혼, 이봉
[출처] 이옥봉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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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방송 기사

2012 6월 10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시대를 잘 못 타고난 여류시인 허날설헌과 이옥봉의 일대기가 그려졌다.

조선 양반 허엽의 딸로 태어난 허초희 즉 허난설헌은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지지 못했던 시대 여성들과 다르게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허난설헌의 집안은 여성에게도 교육 기회를 주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김성립과 결혼한 후 180도 달라진 인생을 살게 됐다. 조선 후기 시절은 성리학 이념이 확고하게 정착되면서 남성 중심 생활을 강요 받았다. 여성이 억압당하는 것은 물론, 글 학문 등을 배울 수 없게 한 것.

친정과 달리 시댁은 가부장 적이고 보수적이었다. 시어머니와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갔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아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과거 공부를 핑계 삼아 자리를 피했다. 김성립은 아내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허난설헌은 이미 8세 때 현실에서 여성의 굴레를 모두 벗어버리고 신선세계 주인공이 된다는 한시를 지었고 이는 김만중이 극찬할 정도였다. 이에 남편은 자꾸 밖으로 돌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돌림병이 돌아 딸과 아들을 잃었다. 슬픔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잔인했다.

이에 허난설헌은 2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특히 그녀는 사망할 당시 임신을 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허난설헌 동생 허균은 친정집에 남아있던 누이의 시와 암송하고 있던 시를 모아 허난설헌집을 발간했다. 이는 중국에서 널리 퍼져 애송됐고 18세기 일본에서 출간되며 인기를 끌었다.

허난설헌과 함께 또 한 명의 여인 역시 여성이라는 이유 만으로 억압받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녀는 조선 명종 때 인물로 이봉지의 서녀 이옥봉이었다. 그녀는 서녀라는 신분 때문에 첩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에 결혼 꿈을 버리고 서울로 갔다.

타고난 감각으로 시를 짓던 그녀는 명사들과 어울렸고 곧 유명인사가 됐다. 이후 조원이라는 한 선비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첩살이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져 결혼을 감행했다.

결혼 당시 글을 짓지 말아야 하는 약조를 한 그녀는 결혼한지 약 10년이 흘렀을 때 이웃의 부탁으로 글을 한 수 지어줬고, 이를 안 남편에게 쫓겨났다. 평생 남편을 그리며 시를 지은 그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행방이 묘연해 졌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뒤 중국에서는 이옥봉의 시가 책으로 출간돼 애송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핍박 받았던 그녀들은 먼 타지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시대가 바뀐 현재,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라 칭송 받고 있다.(사진=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캡처)

사진
http://img.gnj.kr/newsen/news_photo/2012/06/10/201206101103231110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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