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이명박 부친 호적세탁한 일본인이었다

글쓴이: sue**  |  등록일: 01.29.2018 13:37:02  |  조회수: 415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25&articleId=1347237
친일파(2세)+쿠테타(2세) 들아

니들에게 원상회복, 보상할 충분한 시간을 줬다

이제부터 내가 폭로하는 극비의 사실들이 어느 정도인지 니들도 놀랄 것이다

 
이 글이 얼마나 많이 국민들 사이에 퍼날라지고 알려지느냐에 따라서는

제조산하, 국가개조, 세상이 뒤바뀌는 개벽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친일파(2세)는 한국인이 아니라 잔존 일본인이다

친일파(2세)와 손잡고 68년 이상 공포정치와 독재를 이어온 쿠테타(2세)들의

핵심 멤버들 대부분은 족보끼워넣기, 호적세탁한 일본인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이런 친일파(2세)들과 손잡고 68년 이상 해먹은 새누리당 무리들도

이런 호적세탁하고 족보끼워 넣기한 일본인들이 60%에 육박한다는 극비의 정보도 있다.

 

이명박근혜 일족들이 그 중에 하나라고 확신할 만한 정보와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으로 일본에서 건너온 그들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36년 동안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 그런 재산을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가면

2차 대전 패망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일본 땅에서 다시 거지로 밑바닥 생활을 하며

평생을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 일본인들은 한국에 남기로 한다


여러분들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는가?

부자라면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해방 후에 1차 조사에서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들이

어떤 통계조사에서는 80만명 다른 기관에서 조사한 바로는 많게는 13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국정청의 발표는 대부분 일본으로 귀환 했다고 기술했으나 친일파를 미국앞잡이로 세워놓고

그들의 지지세력을 확보해야 했던 미군정청의 입장으로 봐서 통계를 조작해 기술했을 가능성이 높다)
 

일제 36년 동안 수탈로 쌓은 엄청난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런 일본인들은 어떻게 했을까?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임은 자명하다.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은 수십만 명의 일본인들 중에서 미군정이 본국으로 강제 송환을 명령하자

2차로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으나 돌아갈 수 없거나 끝까지 재산을 지키고자 했던 자들은

자기들 끼리 똘똘뭉쳐야 산다는 생각으로 그룹을 이루어 그 막대한 재산을 금과 은으로 바꾸어

한민족이 별로 살지 않는 대구 경북이나 의령 등의 깊은 산골 마을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36년 동안 축적해온 엄청난 부로 농토와 사람들을 돈으로 샀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중앙 무대로 나설 수 있어 재벌이 되는 과정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친일파를 등용하여 요직에 앉힌 자들에 의해 다시 중앙 무대로 등극한다

일제 36년 동안 이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고위직이나 요직에서 장악했던 권력과 금권으로

모든 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조작하고 만들었던 경험이 풍부했다 해방 정국의 혼란기에

족보세탁, 호적세탁, 이름 바꾸기는 식은 죽먹기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격한 유교적 전통과 유림들이 장악하고 있던 조선 후기에도 일반인들 사이에

성행했던 성씨만들기, 족보 사들이기가 해방 후 혼란기에는 더욱 손쉬워져서 새로운 족보만들기,

유명 성씨 족보에 끼워넣기, 호적세탁은 엄청나게 횡횡했다고 한다


20년 전만 해도 국립중앙도서관이나 시립도서관 등에서 족보가 없는 사람들을 유명 성씨에

끼워 넣어주고(주로 김씨, 박씨) 먹고 살던 노인들이 수십 명이 넘었다  지금도 수십만원만 주면

경주 김씨, 밀양 박씨의 세보도에 이름을 끼워넣는 죽보만들기를 해주는 노인들이 그곳에는 상주하며

아직도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이 해방 후 혼란기에 어떤 것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럼 일본인이 해방된 남한 땅에서 이와같이 재산을 지키고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남은 유일한 문제는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주위 한국인들의 입막음을 해야 한다


그들 일본인들이 한국인으로 족보세탁, 호적세탁을 하고 살아가는

사실을 주위에 떠들고 다니면 엄청난 재산은 물론 생명까지 위태롭다


이들 인본인들이 이승만 정권에서 검찰, 경찰, 국회의원 등 고관대작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자 이들이 생각해낸 것이 일제가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에

써먹은 공포정치와 학살정치다


공포정치는 유신독재로 그 효과를 극대화 했고 고

학살정치는 남경학살 때나 마찬가지로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들이 혼란을 틈타

정부전복을 획책한다는 명분으로 조선인들을 학살을 하고 일본제국주의 정권을 지속하는데

성공했던 전례를 그대로 재현하여 한국에서 이념으로 정부 정복을 꾀한다면서 빨갱이 몰이를 해서

해방 후에 한국에 남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입 밖으로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도록

전국민을 철저히 벙어리로 만들었던 것이다


유신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어떻게 한 두삼람의 입도 아니고

전국민들을 말 한마디 못하는 벙어리로 만들 수 있냐면서 믿지를 못한다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몸소 겪어본 사람들은 공포정치가 얼마나

이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고 효과적인 방법인지 너무도 잘 안다.

유신정권이 곧 일제의 공포정치를 그대로 모방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5호 담당제로 김일성 일가의 독재가 철옹성으로 유지 되었듯이

박정희 시대 유신독재는 북한의 그것을 능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믿지 못한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한결같이 벙어리 눈봉사로 살 수 있다는 것인지....ㅋㅋㅋㅋ

 

지금도 9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해방 후 면서기르 지내던 자가 해먹은 일본인 땅 문제를 거론해 달라고 하면

공포에 떨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런 얘기 했다는 말은 절대 하면 안된다고 다짐을 받는다

일본인이 버리고 간 땅도 그럴진데 하물며 친일파들이 나라 땅을 자기 앞으로 등기 이전해서

챙겨 먹은 사실에 접하면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해방 후 엄청난 재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 친일파 이완용 일족과 함께 의령으로 숨어든 일본인들이 있었다

이병철 이건희도 이완용 일가 친척이었으나 족보세탁 호적세탁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있다

이런 사실을 알게된 의인 우순경은 학살로 이들을 응징했나?--의령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 

http://cfile29.uf.tistory.com/image/2572363B55F476811D8EFA

1980년대 초, 한 신문사에서 조사한 한국의 100대 재벌 중 30여 명이 한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 출신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친일파들이 만들고 장악한 수구 언론들은

이런 자랑스러운 ? 사실을 전국적으로 전국민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허거나 알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

 

LG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과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지수초등학교 동기다.(족보세탁한 이완용 일가)

이병철 회장이 어린 시절 매형인 GS그룹의 허순구 씨 댁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머물렀기 때문이다.


1980년대 한국의 100대 재벌 중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30명이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라는

신문기사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놀라운 사실이다.

부자의 기운을 받으며 승산마을 산책 풍수지리가 얼마나 신빙성이 있고

지기가 사람의 운명을 얼마나 좌우하는지는 몰라도 놀라운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인근 지역인 의령의 정암강에 가마솥을 닮았다는 솥바위(정암)가 있는데,

이를 기점으로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 생가와 LG그룹 구인회 회장 생가,

또 효성그룹 조홍제 회장의 생가가 20리라는 같은 거리차를 두고 자리했다는 점이다.

(GS그룹 허회장 일가의 생가들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명박 일가가 1961년 호적 세탁을 해야 했던 이유 -- 일본인 이었다.

http://cafe.daum.net/ssangcho44/89vI/408?q=%C0%CC%B8%ED%B9%DA%20%B0%A1%B0%E8%B5%B5&re=1

 

 

이명박은 한국 사람이 아닌 조상이 일본인인 오리지널 일본인이라는

극비 정보가 일본 정계에서는 파다하게 알려졌었다 .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들은 2007년 대선에서 순수 일본 혈통의 쓰레기를

묻지마투표, 묻지마지지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이다.


이명박이 나라창고 국민세금을 저신의 주머니돈 처럼 쓰면서 챙긴

수십만 평에 달하는 전국의 땅 중에는 이미 일제 때부터 일본인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챙겼던 땅을 되찾는 작업을 해서 확보한 것이라는 정보도 있었다.

 

 

아래는 해방 후에 일본인들이 어떤 과정으로 한국에 남아 살데 되었는지

그 배경과 시대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 위키백과 발췌 (해방 후 잔존 일본인으로 검색)--------


당시 전시였던 관계로 부산의 전 지역은 등화관제를 실시하고 있었는데 8월 15일을 기해 해제되었다고.

1945년 8.15일 히로히토 덴노의 녹음방송으로 일본이 패전을 선언하면서 한국이 해방되자,


조선총독부는 총독령으로 각 기관에 달려있던 덴노의 사진과 조선 각 지역의

일본 신사에 설치된 위패들을 모두 소각할 것을 명령했다.


만주 작전의 성공으로 소련군이 한반도 이북지역으로 입성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만주와

이북 주재 일본군 수뇌부는, 자신들과 군인 가족들을 즉시로 대피시키고는

나머지 100만 명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피방송도 내보내지 않았다!


아울러 이전에 각 기관 수장들과 조선주재 일본 대기업 간부들은 이미 탈출했다.

이 결과로 졸지에 소련군이 이북에 입성하는 모습을 본 일본인들은 경악하고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자신들을 적군의 손에 내팽겨쳤다는 사실에 분노했으며,

일부는 노동력이라는 이유로 소련으로 끌려가거나 재산을 모두 몰수당한 채 빈손으로

이남으로 내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인들은 하루빨리 고국으로 귀환하기 위해 분주했는데,

은행에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빼가고 자신들이 모아둔 재산들 모두를 갖고 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고 한다. 얼마나 짐이 많았는지 감당을 할 수가 없어 비틀거리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그 재산들은 모두 우리를 착취해 이룩한 것이므로 함부로 가져갈 수 없다"며 반발하자

미군정에서 이를 수용, 반출할 수 있는 개인 재산과 현금 반출액을 제한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전쟁 당시 많은 일본의 선박들이 파괴된 까닭에 배편도 별로 없었고,

당장 입국하게 되면 여러 가지 검사나 조사로 그나마 가지고 간 재산이 더욱 줄어들게 되니,

상당 수의 귀환 일본인들이 밀수선을 이용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밀수선은 비싸고 위험한 데다

믿을 수 없었다. 이들을 노리는 해적까지 횡행했다고 한다.


문화통치 당시에 이주해서 한반도에서 산 일본인 부모들에게서 한반도에서 태어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일본으로 귀환해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 일본 경찰관은 충청도에서 출생했는데 광복이 되어 자신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환하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반도 출신 일본인들은 조선을 합병한 영토가 아닌 원래 일본 본토의

일부로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다.


하긴, 조선이 독립된 나라였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

누구에게서도 '여기는 우리가 부당하게 침략해서 빼앗은 곳'이라고

알려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채로, 태어날 때부터 그때까지 평생을

여기도 일본 땅이라고 교육받으며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아왔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1945년 8.15일 해방 후 한반도의 일본인들은 실직하거나 권력에서 밀려났고,

생계를 위해 궂은 일을 하거나 세간살이를 헐값에 파는 등 생활이 악화 일변도였다.

그러나 일부 한반도 거주 일본인들은 전국적인 대공습으로 폐허가 된데다

미국의 원폭 투하로 기반도 없는 본토로 돌아가는 것을 꺼렸다.

그래도 한반도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는 것을 느끼자

더이상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으로서 계속 잔류하기로 마음먹었다.


YMCA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한국어 수업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희망자들이

정원을 초과, 학급을 하나 더 늘렸을 정도. 하지만 사회혼란 속에서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이 격화되고,

미군정의 일괄송환 방침이 확정되자 이들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일괄송환이 되지 않았다면

이들은 오늘날 한반도의 소수 민족으로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뭐 몇년 후 한반도도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일본으로 귀환한 귀환 일본인들의 생활 역시 피폐하긴 마찬가지였다.

당시의 일본의 상황도 상황인지라 거의 잉여 취급이었다고 한다.

귀환한 일본인들은 생활터전을 잡기까지는 수용소 생활을 했는데,

일본 내 사정 역시 현시창이다 보니 아예 수용소를 영구거처로 삼는 귀환 일본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본토 일본인들 역시 자신들의 생활도 힘든 판에 먹여야 할 입이 더 생긴 것에 대해 불쾌해

했다고 한다. 심지어 전염병이 돌자 이를 옮기는 주범급으로 간주하는 듯한 사회분위기

역시 우호적이지 못했다.


아예 본국인들이 "너희는 식민지에서 그렇게 수탈하고 착취해 잘 먹고 잘 살았으니 천벌받는 거야"라는 말을

하는 까닭에 그 괴로움이 더했다고 한다.이렇게 한반도에 살던 일본인들은 크고 작은 고초를 겪었지만

그래도 38선 이남의 일본인들은 그나마 처지가 나았다.


이북의 일본인들은 소련군의 현지조달에다가 반일 감정도 남한 지역보다 심해서

잔류는 커녕 하루빨리 남하하여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남한(부산)으로 줄을 이루었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 조선인들을 괴롭히거나 그러하다고 여겨진 일본 경찰 출신 일본인들도 상당수

살해되었는데, 이는 남한 지역보다 훨씬 더 했다고 한다.


 

-------------- END ------------

 


■이명박 대통령 가족과 시마다 목장 인연사

1929년=이명박 부친 이충우씨 오사카에서 시마다목장과 첫 인연
1930년=큰 누나 귀선씨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오사카시 스미요시구 마쓰다정 2정목)에서 출생
1933~1935년=큰형 상은씨,·작은형 상득씨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 오사카부 나카가와지군 나가요시무라)에서 출생
1941년=이명박 대통령 시마다목장 사원 주택(오사카시 히라노구 가미미나미 후쿠이도정)에서 출생
1944년 말=이충우씨 시마다목장과 함께 네야가와로 이전
1945년 초=시마다목장과 헤어짐
1945년 3월=여동생 귀분씨 출생(오사카 동쪽 미에켄)
1945년 10월=한국행

 

위 내용은 이명박의 일본 고향관련 내용으로 중앙일보 계열인 일간스포츠에

2008년에 보도된 것입니다. 아래는 같은 보도물에 첨부된 사진 두 장입니다.

 

지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게 그때 보도된 사진입니다.

 

모든 오해는 그 일간스포츠 기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진 두개를 첨부했는데 한장에 대해서만 설명을 쓰고 다른 사진인 가족사진은 누구 가족인지,

누가 이충우씨인지 아무 설명이 없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불가했던 아래 두 가지의 사진에서

2)번에 맨 오른쪽에 서 있는 남자가 이충우고 뒤에 줄에 않아 있는 나이든 남자가

그의 아버지(이명박 할아버지)이고 어머니 양 옆에 이충우의 형제자매들이라는 가정을 해보면

사진에 보이는 사람들의 관계가 정확히 설정 됩니다.

 

이명박이 자서전에 아버지 이충우가 가난해서 돈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농장에서 일했다고 기술했으나 그것을 정반대로 유추해 보면 정확히 아구가 맞아 떨어진다

 

즉 1945년 해방 후에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본토로 돌아갔는데 이명박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반대로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역이주를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명박 자서전과는 반대로 이충우의 아버지(이명박 할아버지)는 원래 일본인으로

아들 이충우(이명박의 아버지)와 일제 36년 동안 식민지 국가인 한국에서 수탈한 재산을

불리기 위해 체류했고 일본이 폐허로 전쟁에서 망하자 한국에 있는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서 자식들을 낳고 살고 있던 아들 이충우(이명박 아버지)를 해방 후에

한국으로 보내 재산을 지키면서 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도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이명박의 아버지 이충우도 가난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도 부자가 망해도 3년을 산다고 아들 이상득과 이명박을 대학 교육까지 시킬 정도로 이충우는 

부를 지키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명박의 자서전에 몇날 며칠을 밥을 굶으면서 물로 배를 채웠다고

서술한 것은 6.25 직후의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1)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Total_ID=3053197

 

2)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total_id=3117942

 

이명박의 모든 것을 까발린다(이명박 갤러리)--디시인사이드

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lmb

 
친일파2세)+쿠테타(2세) 매국노 매족노들의 수괴들은

대부분 잔류한 일본인이라는 본인의 폭로에 고소 고발할 놈이 있다면

용기있는 쪽발이로 인정해 주겠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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