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 의문사 사건

글쓴이: nn  |  등록일: 08.22.2012 15:35:49  |  조회수: 2124
장준하 의문사 사건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 고(故) 장준하(張俊河) 선생. 일제강점기 때에는 광복군 장교로 독재정권 하에서는 언론인으로 저항운동의 표본이 된 그는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양심의 상징이었지만 친일파 출신 군사독재정권에서는 눈에 든 가시같은 존재였다.
1975년 당시 유신개헌 반대운동을 주도하던 장 선생은 광복절 이틀 뒤인 8월 17일에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데, 유일한 목격자의 진술에 따라 수사기관이 내린 결론은 실족(失足)에 의한 추락사(墜落死).

그런데 당시 그 발표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한 기자는 왜 구속되어야만 했으며 29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왜 타살의혹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일까? 단순 사고사(事故死)인가? 박정희 독재정권의 음모에 의한 타살인가? 군사정권 하에 벌어진 의문사(疑問死) 사건 가운데 최대의 미스터리, 장준하 선생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은?
한국 현대사에는 권위주의 통치라는 인권의 암흑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수많은 의문의 죽음들이 있었다.
이러한 의문사(疑問死)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지난 2000년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가 출범했고, 지금까지 조사에 착수한 사건만 130여건에 달한다. 그 사건의 주인공들 가운데 한 사람인 장준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에는 광복군 장교가 되어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해방 후에는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해 반독재항쟁(反獨裁抗爭)에 앞장섰던 재야의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장 선생은 유신독재정치가 한창이던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계곡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다.
장준하 선생이 추락사(墜落死)했다는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계곡 현장, 14m나 되는 가파른 벼랑길 아래에서 장 선생의 시신(屍身)이 발견된다. 평소 등산을 즐겼던 장 선생은 매주 지인(知人)들과 산행(山行)을 즐겼다.

그러나 1975년 8월 17일, 이날은 날씨가 더워서 본래 산행을 쉬기로 했었는데, 하루 전날 평소 안면이 있었던 소림등산산악회 회장으로부터 등산을 가자는 연락을 받고 예정에 없던 산행에 나섰다고 한다.
장 선생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오전 11시 30분경 약사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30여분 동안 계곡을 따라 올라가던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등산로가 시작되는 계곡 상류에 여장을 풀었다.
이때가 12시 무렵, 곧이어 장 선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행과 따로 떨어져 혼자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이것이 산악회원들이 장 선생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2시간 뒤 장 선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이 2시간 동안 장 선생과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는 K씨는 장 선생이 홀로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뒤따라 갔다고 한다. 12시 25분, 식사장소에서 5백여m 떨어진 곳에서 K씨는 경계근무 중이던 군인 2명과 함께 얘기를 나누던 장 선생을 발견했다고 한다.
군인들과 헤어진뒤 K씨는 장 선생과 함께 산을 타기 시작해 액사봉 정상에 오른뒤 점심을 먹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K씨에 따르면 하산하는 과정에서 장 선생이 빨리 내려가자면서 길도 없는 가파른 벼랑길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벼랑을 내려오던 중 장 선생이 소나무를 붙잡고 내려오다가 나무가 휘어지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다음날 언론은 경찰 발표에 따라 장 선생이 실족(失足)해 추락사(墜落死)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틀 뒤 당시 동아일보는 장 선생의 사인(死因)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경찰은 단순 실족사(失足死)로 서둘러 이 사건을 종결하고 이 사건에 의문점을 제기했던 동아일보 기자를 구속했다.
유언비어(流言蜚語)를 유포하거나 사실을 날조해 왜곡된 기사를 썼다는 혐의로 유신헌법 9조에 의거한 조치였다.
약사봉은 장준하 선생 사망 당시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된지 불과 열흘 밖에 되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등산로가 나있지 않은 상태였다. 목격자 K씨의 말대로라면 12시 30분경에 장 선생을 만나 정상에 오르고 사고지점까지 내려간 시간이 불과 30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장 선생의 사망 시각이 1시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때 이러한 거리는 1시간 30분 동안 걸어야 갈수있는 거리인 것이므로, 상당히 신빙성이 떨어지는 증언이라 아니할수 없다.
또 K씨는 장 선생이 시간을 아끼기 위해 등산로를 우회하지 않고 가파른 하산길을 고집했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이 지점은 등산전문가들도 최고의 등반장비가 갖추어져야 내려갈수 있을 정도로 험준한 지형이라는 얘기이다. 이 때문에 유일한 목격자의 진술에도 상당한 의혹이 제기되고 잇는 것이다.
장준하 선생은 군사독재정권에 과감하게 항거하였고 민주화운동 인사들과 지식인들에게 상징적인 존재로 널리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단지 목격자의 진술에서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 선생의 죽음이 의문사(疑問死)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 장 선생의 사회적 위치와 정치적인 영향력이 막대했다는 데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가 장 선생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채택한 것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다. 실험은 차량 충돌 실험등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문가인 최형연 홍익대학교 교수 연구팀이 맡았다.
연구팀은 먼저 장 선생이 추락했다는 약사봉 계곡과 똑같은 높이 14m 경사 75도의 컴퓨터 지형모델을 만들었다. 그리고 차량 충돌 시뮬레이션의 인체모델을 토대로 장 선생의 체격과 똑같은 키175cm에 몸무게 75kg의 인체모형을 완성했다. 신체의 골격과 외형 등 사람과 똑같은 모형이다.
추락실험의 정확도 검증을 위해 연구팀은 먼저 돼지 추락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대상으로 돼지를 선택한 것은 돼지의 몸속 장기들의 위치와 크기가 사람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었다.
몸무게 75kg의 돼지 사체를 3m 높이에서 추락시켰다. 그 결과 실제 추락시 받는 충격과 장기 파손 상태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 결과와 거의 똑같이 나타났다.
이것은 인체충격 시뮬레이션 실험의 과학적 근거가 될수 있었다.
 
곧바로 연구팀은 장 선생의 추락 당시 상황을 12가지로 재연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을 시작했다.
그 첫번째 경우는 목격자 증언대로 장 선생이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다가 떨어졌을 경우. 시뮬레이션 결과에는 모두 23번을 벼랑에 충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 결과 머리와 등, 그리고 다리에 심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당시 장 선생의 시신에서는 등쪽에 찰과상만 있을 뿐 심한 외상의 흔적은 없었다. 그리고 발견 당시 장 선생의 머리는 왼쪽을 향해 있었지만 시뮬레이션 결과에는 머리가 절벽에 걸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12가지 경우 가운데 신체 손상이 가장 적은 경우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벼랑에 서있다가 발을 헛디뎌 미끄려져 추락했을 경우, 벼랑을 통해 미끄러져 내려오지만 추락과정에서 두바퀴를 돌며 굴러 덜어지게 된다.
 
시뮬레이션 결과 이 경우 역시 머리와 다리 부분에 큰 손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추락당시 시신이 하늘을 보고 누운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제 발견 당시 장 선생은 도로 누운 상태였다. 이 두가지 경우 뿐만 아니라 12가지 경우 모두 두개골이 함몰되거나 흉부와 팔, 다리 등에 심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지만 장 선생의 시신은 외부골절 하나도 없이 깨끗한 상태였다.

아울러 장준하 선생의 시신에서 발견된 세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점은 이번 시뮬레이션 분석으로도 규명되지 않았다. 먼저 시신 겨드랑이에서 발견된 멍자국은 12가지 추락상황 그 어느 경우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또 오른쪽 귀 밑부분에서 발견된 면봉 크기의 깊이 2cm의 구멍 역시 여전히 의혹이다.
게다가 오른쪽 팔과 엉덩이 부분에서 주사자국이 발견된 것은 추락사가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박경수(장준하 평전 저자) "절대로 등산하다가 추락사고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
분명 당시 박정희 정권에의 음모에 의해 저질러진 타살이다."
30년이 아니라 130년이 지난 사건이라고 해도 밝힐 것은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진상 규명 불가능의 결론을 내렸다. 심증이나 정황적인 증거로는 추락사가 아닌 것이 틀림없지만 추락사가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한 타살이 분명한데 누가 어떤 목적으로 장 선생을 살해했는가의 여부를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염규홍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 위원 "장 선생이 타살되었다면 당시 정권에 의해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장 선생이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좀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린 것 같다."
진상규명 불능결정에 대해 의문사 위원회는 무엇보다 국가정보원 등 국가행정기관에서 사건조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장호권 씨 (장준하 선생 장남) "타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다면 누가 죽였는지 알아야 될것 아닌가?
누가 어떻게 죽였는가?
대한민국의 각종 사찰이나 수사기관에 모든 정보가 잇는데 내주지 않겠다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의문사위가 진상규명 불능결정을 내린 사건은 장 선생의 경우 뿐이 아니다. 의문사위가 지난 1년 동안 44건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지만 진상구명 불능결정을 내린 사건은 무려 23건이나 된다.
의문사위에게 조사에 비협조적인 사람을 강제 구인하거나 핵심 정보를 입수할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도 진상규명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더구나 몇십년이 지난 과거의 사건들을 1년이라는 기간 내에 조사해야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조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측이 비협조적이라는 의문사위의 지적에 대해서 국정원 측은 이미 충분히 협조를 해 왔었고 더이상 감추고 있는 자료도 없다는 입장이다.
한쪽에서는 이미 다 내놓았다고 얘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더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양쪽의 말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인데 어느쪽의 말이 맞는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더 확실한 조사를 위해서는 의문사위의 권한이 더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의문사(疑問死) 관련 사건들은 성격상 범죄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범죄를 수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범죄행위라면 꼭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할 것이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은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
수많은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장 선생의 사망 원인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hdps&logNo=4003130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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