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차인 일본차 판매 64% 감소
그랜저의 질주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현대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수출 길이 막히자 내수 시장에 집중하며 신차 할인 등 마케팅에 힘을 쏟았다. 또 '준대형'으로 분류하는 그랜저에 대항할 경쟁자가 없다는 점도 호재다.
특히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 등 기존 경쟁자였던 일본 차는 지난해 '보이콧 저팬' 이후 판매량이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 차 판매량은 지난해 4월보다 64% 감소했다.
그랜저는 코로나19 무풍지대였다. 내수 시장만 치면 코로나로 오히려 기회를 잡았다. 더 뉴 그랜저는 지난해 사전 계약 물량만 2만4000대에 달하는 등 '대기 수요'가 쌓였지만, 코로나19로 수출 차량 생산이 막히자 생산 라인을 내수용으로 돌려 공급을 늘릴 수 있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쏘나타와 그랜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은 울산공장과 달리 한 라인에서 생산한다. 쏘나타 물량이 줄면 그랜저를 늘리는 등 유연하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아산공장에서 생산된 2만2000대 차량 중 그랜저는 약 1만5000대, 쏘나타는 7000대로 비중은 '2대 1'이었다. 차가 잘 팔리다 보니 그랜저 생산 대수는 코로나19 이전인 1~2월보다 50% 이상 늘었다.
국민차, 아반떼→그랜저급으로
국민소득이 증가하며 소비자가 선호하는 차급이 소형·중형차에서 중형·준대형으로 바뀐 것도 그랜저에 득이다. '국민차'의 기준이 아반떼·쏘나타에서 그랜저 급으로 옮겨간 셈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소비자의 큰 차 선호 현상은 변함이 없다. 소유한 차를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연결짓는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랜저는 2009년 4세대 그랜저(TG)를 출시하며 "성공한 사람들의 차"를 컨셉트로 내세웠다. 지난해 더 뉴 그랜저 출시 때는 이를 더 부각해 여러 편의 광고를 잇달아 내보냈다. 업계 관계자는 "'그랜저 정도는 타야 성공한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어 거부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랜저 판매엔 나쁘지 않은 역할을 한 거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 구매층은 40~50대 남성
그랜저는 누가 샀을까.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가 올해 국토교통부 신차 등록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그랜저의 주 구매층은 40~50대 남성이었다. 법인(1만4065대) 판매를 제외한 3만3805대 중 50대 남성은 전체의 26.4%를 차지했으며, 40대 남성(19.6%)과 60대 남성(19.4%)이 뒤를 이었다. 반면 20대 여성은 1%가 되지 않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부 교수는 "소득 양극화로 중소형 차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 층은 줄어든 반면 중대형 이상 차를 살 수 있는 층은 늘었다. 그랜저 가격대에 마땅한 차종이 없는 것도 득이 됐다"며 ""광고한 대로 고소득 비즈니스맨, 퇴직 후 개인 사업을 하는 남성들이 선호하는 차가 됐다"고 말했다.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