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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기록 챙겨주기' 논란에 대해서

글쓴이: LA_Dodgers  |  등록일: 07.18.2018 17:53:02  |  조회수: 1383

언제, 어디나 시작은 그렇다. 스프링 캠프는 비장한 표정들로 가득하다. 마치 목숨이라도 걸 기세다.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 하나씩을 품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들이 사방에서 빛난다. 엔트리 생존, 주전 확보, 두 자리 승리….

 

그도 마찬가지다. 지상 과제가 있다. 반드시 이루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하지만 벌써 10년 가까이 꿈에만 그리는 소원이 있다. 바로 ‘200’이라는 숫자를 채우는 것이다. 그는 투수다. 그래서 혹시 그런 연관성도 추측한다. 200이닝? 200K? 천만에. 그 정도는 그에게 껌이다. 밥 먹듯 달성하는 숫자다.

꿈에도 그리는 숫자 ‘200’은 몸무게다. 바로 200파운드(90.7㎏)를 넘기는 것이다. 프로필에 있는 현재 체중은 180파운드(82㎏)다. 키와의 조합을 보면 이해가 된다. 농구 선수를 해도 충분할 6피트 6인치(198cm)다.

비쩍 마른 이 투수의 별명은 폴이었다. ‘Paul’이 아닌 ‘pole’ 말이다. 야구장 폴대 뒤에 숨어도 될 것 같다고 대학 친구들이 붙여줬다. 프로에 입단해서는 콘도르(condor)로 불린다. 커다란 독수리 같은 투구폼 때문이다. 그의 풀 네임은 크리스토퍼 앨런 세일, 흔히 크리스 세일로 불리는 선수다. 

 

입이 짧아서 그런가? 전혀. 오히려 반대다. 그의 식단은 화려(?)하다. 운동 선수들이 금해야 할 것들 천지다. 피자, 치즈버거, 필리 치즈 스테이크…. 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타코의 여왕이다(잘 만들어서). 매일 밤 파티가 벌어진다. “양껏 먹고 재면 가끔 200파운드가 넘기도 해요. 그런데 다음 날이면 다시 원래 몸무게도 돌아오곤 하죠.”

 

언젠가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로 이동할 때다. 기내에서 애피타이저로 커다란 선디 아이스크림 2통을 간단히 비웠다. 그리고는 감자칩 30봉지를 혼자서 해치워버렸다. 불과 4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다. 팀 동료였던 애덤 던은 그의 식성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10파운드(4.5kg)은 찔 것 같더라구요.” 참고로 던은 285파운드(130kg)나 나간다.

폴대와 친구 맺은 이 투수 때문에 요즘 시끌시끌하다. 올스타급 베테랑의 중요한 개인 기록과 연관됐기 때문이다. 

 



보스턴은 터가 안좋아

집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다. 이번 출장길은 영 신통치 않다. 특히 보스턴은 터가 안좋다. 3게임 모두 탈탈 털렸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의 속이야 오죽하겠나. 어디 가서 북어국이라도 끓여야 할 판이다. 하지만 우리쪽 업계가 그런 사정 봐줄 리 없다. 현지 기자 누군가 싸늘한 비수 하나를 꼽는다. “Choo는 왜 안 썼어요? 기록 때문인가요?”

배 감독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러나 이내 냉정을 찾는다. 하긴 어디 이런 일이 한 두 번인가. 그런 거 잘 하라고 연봉 받는 직업이다. 직설을 피하고, 빙빙 돌리기가 시작된다. 은유와 서술의 화법이다. “늘 그런 것처럼 우린 이기기 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되는 않는 억측은 말라’는 뜻이다.

친절하고 자상한 설명도 뒤따랐다. “만약 8회 기회에서 조이(갈로)가 출루했다면 라이언(루아) 때 Choo를 대타로 썼을 지 모른다. 이건 당사자와도 미리 얘기를 했던 부분이다.”

부연하면 이런 상황이다. 레인저스가 8회초 2-4로 따라붙었다. 계속된 2사 1, 2루에서 레드삭스는 마무리 크레이그 킴브렐을 등판시켰다. 승부처라고 본 것이다. 이후 로빈슨 치리노스 볼넷, 조이 갈로 삼진 아웃으로 이닝이 끝났다.

싸늘한 기자는 이 부분을 짚은 것이다. 왜 치리노스 타석에 대타를 내지 않았냐는 뜻이다. 반면 감독은 ‘치리노스가 아니고, 그 다음-다음인 루아 타석을 대타 타이밍이라고 판단했다’는 대답이었다.

또 다른 매체는 이렇게 보도했다. ‘추신수는 이미 5~6회부터 워밍업에 들어갔다. 이후 배팅 글러브와 헬멧을 옆에 두고 있었다.’ 즉 5분 대기 상태로 출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여기서 팩트가 충돌하는 지점이 생긴다. 감독은 분명히 ‘미리 얘기한 부분’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8회에 대타로 나설 것이라는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준비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서로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감독의 블러핑인가?

<…구라다>는 이 대목을 이렇게 이해한다. 신기록의 주인공은 늘 그랬다. “선발에서 제외되더라도, 언제나 팀이 필요하다면 대타로 나가겠다. 기록에 연연하지 않겠다.” 5회가 지나면서 워밍업을 시작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종반 승부처에서 언제라도 호출에 응하겠다는 자세다. ‘미리 얘기한 부분’이라는 감독의 말은 그런 공감대를 뜻한다.



우리가 지켜야할 가이드라인

2011년의 일이다. 출루 기계가 클리블랜드 공장에서 돌아갈 때다. 라이벌 팀 중에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있었다. 그곳 감독이 유명한 아지 기옌이었다. 두 팀은 같은 지구(AL 중부)라서 뻔질나게 만났다.

하루는 출루 기계가 상대 감독인 기옌에게 한참 투정을 부리고 갔다. “감독님은 왜 내가 나올 때마다 (맷) 손튼을 내보내요? 다른 투수 올리면 안돼요?” 손튼은 리그 최고의 좌완 스페셜리스트였다. 기옌 감독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오늘은 바꿔볼까?” 그리고 그날 올려보낸 게 비쩍 마르고 키만 큰 투수였다. 바로 루키 시즌의 크리스 세일이었다.

이튿날 출루 기계는 다시 기옌 감독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절레저레 흔들며 이렇게 얘기했다. “저기요 감독님, 다시 손튼으로 바꿔주면 안될까요?”

세일은 특히 좌타자에게 악몽같은 스타일이다. 워낙 빠르고 강력한 패스트볼을 지녔다. 특히나 나오는 각도가 어렵다. 가뜩이나 긴 팔로 스리쿼터 내지는 사이드암으로 뿌린다. 왼쪽 타자가 볼 때는 마치 등 뒷쪽에서 공이 날아오는 느낌이다. 몸쪽으로 오면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폴대 뒤에도 숨을 것 같은 투수는 이듬해(2012년) 선발 투수로 전업했다. 첫 등판 경기에 출루 기계는 왼손을 강타당했다. 그나마 보호대를 하던 시절이라 다행이다. 엄지 뼈에 살짝 금이 갔다. 불과 1년 전에 골절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린 끔찍한 기억(2011년 조나단 산체스)이 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 성적은 참혹한 수준이다. 이제까지 26타수 2안타에 불과하다. 타율을 따지면 1할이 안된다(.077). 그 사이 삼진은 무려 12번이나 당했다. 

 

 

크리스 세일 때 추신수를 뺀 건 충분히 이해된다. 이기는 라인업을 짜기 위한 당연한 작업이다. 그걸 두고 기록을 지켜주기 위해 일부러 피하게 해줬다고 해석하는 건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애드리안 벨트레를 지명타자 자리에 쓰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대타에 대한 논란도 마찬가지다. 만약 어제(현지시간11일) 8회 반격에서 기회가 이어졌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배 감독의 말처럼 타석에 서야 했을 지 모른다. 비록 한 번으로 끝나 연속 기록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5회부터 배트 글러브와 헬멧을 준비한 당사자의 각오에서도 이런 면이 확인된다.

물론 승리는 최고의 목표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는 그 외에도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 속에서 유지된다. 개인 기록도 그 중 하나다. 반드시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존중해줘야 한다. 그게 팀과 리그, 그리고 주변에 있는 우리가 지켜줘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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