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LA 시장 선거를 앞두고 시청 안팎이 '배신감'과 '충격'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캐런 배스 LA시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했던 니티아 라만 시의원이, 이번에는 역으로 배스 시장의 자리를 노리며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입니다.
* 2월 22일 워싱턴 생일을 기념하던 것이 오늘날 프레지던트 데이(Presidents’ Day)로 확대됐습니다. 프레지던트 데이를 맞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업적과 신화를 다시 조명해봅니다. 나무 틀니 전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보스턴 포위전 승리는 미국 건국사의 분수령이었습니다.
박현경 기자!
1. 니티아 라만 시의원이 LA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것이, 상당히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보여지는데요. 어떤 상황입니까?
네, 니티아 라만 시의원은 후보 등록 마감 시한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지난 7일, 전격적으로 시장 출마를 발표했습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배스 시장의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터라, LA 정계에서는 "셰익스피어 비극 수준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사실 니티아 라만 시의원이 캐런 배스 시장을 배신한 것 아니냐는 얘기는 LA한인사회에서도 흘러 나왔었는데, LA타임스가 어제(15일) 이에 관해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2. 두 사람의 관계가 원래는 매우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구요. 배스 시장이 라만 의원을 어떻게 도와줬었나요?
지난 2024년 라만 의원의 시의원 재선 당시, 배스 시장은 직접 지원 유세 광고를 찍고 캠페인 자원봉사자까지 보내주는 등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배스 시장의 인기에 힘입어 라만 의원은 50.7%의 득표율로 결선 투표 없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3. 그렇게 배스 시장을 지지했던 측에서는 이번 라만 의원의 출마에 관해 반응이 어떠한가요?
'배신감'이 든다는 반응입니다.
라만 시의원의 재선을 도왔던 민주당 활동가들은 "라만 의원이 관계를 일회용으로 취급했다"고 비난하고 있고요.
흑인 사회를 대변하는 LA 센티넬(Los Angeles Sentinel)은 70년대 히트곡 '백 스태버(Back Stabbers, 배신자)'를 인용하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경찰노조(LAPL)도 "정치적 배신이 죄라면 라만은 수배범"이라는 날 선 성명을 냈습니다.
4. 정작 당사자인 캐런 배스 시장은 이 상황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배스 시장은 겉으로는 담담한 모습입니다.
"출마가 놀랍긴 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시정 기록으로 당당히 평가받겠다고 답했습니다.
사적인 감정보다는 정책 대결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5. 라만 시의원은 왜 하필 지금, 자신을 도와준 시장에게 맞서기로 결심한 건가요?
라만 시의원은 "LA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노숙자 문제 해결과 기본 서비스(가로등 수리, 도로 포장 등) 제공에 있어 현 시정부가 무능하다고 비판했습니다.
라만 시의원은 자신은 시장을 존중하지만, "내 가장 중요한 관계는 시청 정치가 아니라 LA 시민"이라며 출마의 정당성을 강조했습니다.
6. 정책적으로 구체적인 불만 사항도 있었나요?
네, 이른바 '맨션세'로 불리는 'Measure ULA'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라만 시의원은 이 세금이 오히려 주택 건설을 방해하고 있다며 수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배스 시장의 역점 사업인 '인사이드 세이프(Inside Safe)' 프로그램도 재정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고 꼬집었습니다.
7. 그도 그렇지만,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오죠?
맞습니다.
LA타임스는 몇몇 요인들이 라만 시의원의 결단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제기했는데요.
우선, 배스 시장이 지난해 대형 산불 대응 이후 정치적으로 약화됐다는 평가가 한 요인이구요.
또 주요 잠재 후보들이 출마하지 않으면서 경쟁 구도가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등입니다.
8. 출마 선언 직전에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출마 선언 당일 아침, 라만 시의원이 배스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 사실을 알렸고요.
다음 날 시장 관저인 게티 하우스에서 비공개 독대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함구하고 있습니다.
9. 이번 시장 선거, 구도가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현재 배스 시장은 팔리세이즈 산불 대응 등으로 지지율이 다소 주춤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 진보 진영 라만 시의원이 등장하면서 표심이 갈릴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외에도 활동가 레이 황, 리얼리티 스타 스펜서 프랫, 테크 기업가 애덤 밀러 등이 출사표를 던진 상태입니다.
10. 그런데 만약 라만 시의원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정치적 타격이 크지 않을까요?
전문가들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신뢰인데, 이번 행보가 '잔상'으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제프 야로슬라브스키 전 수퍼바이저는 "만약 라만이 시장이 된다면 아무도 이 일을 기억하지 않겠지만, 패배한다면 관계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11. 결국 유권자들의 판단이 관건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정치적 배신’으로 볼지, 아니면 ‘도시 변화에 대한 도전’으로 볼지는 유권자들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캠페인이 시작될텐데요.
배스 시장의 '시정 연속성'과 라만 의원의 '대대적인 변화'가 격돌하는 뜨거운 선거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12. 오늘은 프레지던트 데이(Presidents’ Day)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날인데요. 조지 워싱턴 대통령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승리 중 하나가 '보스턴 포위전'(The Siege of Boston)인데, 올해가 특히 의미 있는 해라고요?
네, 올해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대륙군 총사령관으로서 이끌었던 첫 번째 주요 작전인 '보스턴 포위전'이 일어난 지 정확히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775년 4월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 이후 시작된 이 포위전은 1년 가까이 이어지며 미국 혁명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받습니다.
13. 당시 보스턴 상황이 어땠길래 '포위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가요?
당시 보스턴은 약 11,000명의 영국군과 수백 명의 왕당파들이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대륙군은 이들을 도시 안에 가두고 보급로를 차단했는데요.
하지만 초기에는 영국군을 몰아낼 결정적인 한 방, 즉 대포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14. 그때 워싱턴이 내린 아주 유명한 결정이 있죠? 수백 마일 밖에서 대포를 가져오라고 시켰다면서요?
네, 조지 워싱턴은 젊은 서점 주인이었던 헨리 녹스를 뉴욕의 타이컨더로가 요새(Fort Ticonderoga)로 보냈습니다.
녹스는 한겨울 추위를 뚫고 수십 문의 대포를 수백 마일이나 운반해 왔는데요.
이 대포들이 보스턴 고지대에 배치되자 보급이 끊겨가던 영국군은 결국 1776년 3월 17일, 배를 타고 도시를 포기하며 후퇴하게 됩니다.
15. 이 승리가 워싱턴 개인에게도 큰 전환점이 되었겠군요?
맞습니다.
더군다나 조지 워싱턴은 당시 군을 떠난 지 20년이나 된 민간인 출신이었습니다.
만약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대륙군은 해체됐을 것이고, 뉴잉글랜드에 대한 영국의 지배는 계속됐을 겁니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면서 워싱턴은 혁명의 얼굴이자 독보적인 정치적 인물로 부상하게 됩니다.
16.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을 둘러싼 '신화'와 '진실'에 관해서도 짚어보겠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나무로 만든 틀니를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구요?
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나무 틀니를 했다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상아, 금, 심지어 실제 사람의 치아를 사용해 만든 의치를 착용했습니다.
당시 기술로 나무는 입안에서 쉽게 부패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7. 정직함의 상징인 '벚나무' 이야기 유명하다고 하던데요? 그건 어떤 내용입니까?
네, 어린 시절 조지 워싱턴이 cherry tree, 벚나무를 베고 "저는 거짓말을 못 합니다"라고 고백했다는 이야기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데요.
6살의 워싱턴이 도끼로 체리나무를 베었고, 아버지에게 들켰을 때 "거짓말을 할 순 없어요... 제가 도끼로 나무를 베었어요."라고 고백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건 사후 전기 작가가 만든 일화라고 하는데요.
워싱턴의 고결함을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전설'인 셈입니다.
18. 한편,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직 외에 농부나 사업가로서도 능력이 출중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혁신적인 농부였고, 미 서부 확장을 지지하는 땅 부자이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마운트 버논으로 돌아가서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위스키 증류소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 노예 제도와 관련해서는 다소 복잡한 평가가 나오는데, 마지막으로 정리해주시죠.
워싱턴은 수백 명의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노예제 폐지를 지지하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부인 마사 워싱턴 여사 사후에 자신이 소유한 모든 노예들을 해방하라고 명시했지만, 법적인 한계로 마운트 버논의 모든 노예를 해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처럼 조지 워싱턴은 건국의 영웅인 동시에 시대적 한계를 동시에 지닌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 오늘 프레지던트 데이를 맞아 곳곳에서 기념행사도 열리고 있죠?
네, 프레지던트 데이를 맞아 오렌지카운티 요바린다의 닉슨 대통령 도서관은 특별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입장료는 오늘 하루 반값으로 할인되고요.
역대 대통령 재현 행사도 진행됩니다.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율리시스 그랜트, 제임스 매디슨 등 역대 대통령을 재현한 배우들이 관람객과 만나 각 행정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질의응답도 진행합니다.
<저작권자 © RK Media,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