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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주 "K팝 뿌리는 크로스오버…제 정체성 담아 정리했죠"

연합뉴스 입력 12.06.2022 09:19 AM 조회 728
7080 레트로 담은 8집 발표…"'꽃 한 송이', 제2의 '천 개의 바람…' 됐으면"
팝페라테너 임형주 [디지엔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K팝의 효시를 대중 가수가 아닌 제가 정리하는 게 주제넘을 수도 있겠지만, K팝의 크로스오버적인 측면을 비집고 들어가 제 정체성을 담아 정리해봤습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5일 정규 8집 '로스트 인 메모리'(Lost In Memory) 발매를 기념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K팝은 과거 번안 가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점에서 크로스오버적인데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보고자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로스트 인 메모리'는 7집 '로스트 인 타임'(Lost In Time)과 더불어 우리나라 옛 가요사를 톺아보는 취지에서 발표한 연작이다. 전작이 1910∼1960년대를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청자에게 익숙할 1970∼1980년대 노래를 다뤘다.

음반은 인기 작곡가 유재환이 만들고 하림이 하모니카 연주 피처링으로 참여한 창작 팝페라 곡 '꽃 한 송이'를 타이틀곡으로 삼았다.

임형주는 "K팝의 효시가 될 만한 곡들을 찾아보니 내가 자주 부른 '사의 찬미'(윤심덕·1926)와 '희망가'(박채선 이류색·1921)더라"며 "이 시대부터 7080까지 한 장에 엮으려니 너무 방대해서 연작 앨범처럼 7집과 8집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앨범을 한 문장으로 축약한다면 '7080 레트로의 집합체'"라며 "K팝의 역사를 망라하면서 내 팝페라라는 정체성도 살릴 수 있어서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임형주는 '꽃 한 송이'에서 기교를 줄이고 담백한 맛을 살려 본연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돋보이게 했다. 청자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꽃 한 송이'란 실은 '국화꽃 한 송이'다. 죽음을 대하는 어느 노(老)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국화꽃 한 송이'라고 하면 너무 직접적으로 의미가 전달돼 역효과가 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에서 '국화'를 뺐죠.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이 장례식장으로 걸어가면서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는 내용입니다."

그는 ""죽음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그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최종 단계라는 점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팝페라테너 임형주 [디지엔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공교롭게도 이 노래가 나오기 약 보름 전 전 국민을 큰 슬픔에 빠뜨린 이태원 참사가 빚어졌다.

또한 임형주의 대표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도 죽음을 다뤘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죽은 자가 산자를 위로한다는 역발상으로 부른 이 곡은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돼 우리 국민을 다독였다.

임형주는 이를 두고 "국가에 경사(慶事)가 있다면 조사(弔事)도 있다"며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국민을 위로해주는 것이 제 운명인 것 같다. 나를 표현하는 말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이 '시대와 함께하는 목소리'"라고 진중하게 말했다.

유재환이 만든 또 다른 노래 '붉은 실'은 4분 39초에 이르는 대작 발라드다. 전주가 약 30초에 달하는데, 이는 요즘 K팝 문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시도다. 가사와 멜로디뿐만 아니라 구성 자체도 레트로를 꾀한 셈이다.

임형주는 "나도 이렇게 내지르는 록 발라드 창법으로 부른 것은 데뷔 이래 처음"이라며 "음반 녹음 당시 나조차 이러한 창법이 낯설어서 애를 먹었다. '꽃 한 송이'와 달리 '붉은 실'은 다이내믹하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소개했다.

3번 트랙부터는 '웨딩 케익'(트윈폴리오), '아도로'(패티김), '누구라도 그러하듯이'(펄시스터즈 배인숙) 등 7080 명곡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웨딩 케익'은 달콤한 멜로디와는 정반대로 결혼식 전날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를 마음에 품고 눈물 흘린다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신화 '너의 결혼식'(2002)이 나오기 20년도 더 전에 비슷한 상황을 노래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는 배인숙이 1979년 발표 당시 담아냈던 세련된 느낌을 2022년 현재에 맞춰 재해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임형주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라는 노래의 생명은 박자와 딕션(발음)"이라며 "리드미컬하게 부르려고 연습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아도로'는 패티김 선생님에 대한 헌사"라며 "외국에 누구누구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패티김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형주 팝페라 8집 '로스트 인 메모리' [디지엔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선배님들이 초석을 다져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K팝 부흥기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나라에 서양 음악이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어요. 이것이 우리 나름대로 개량됐고, 고유의 민족성이 투영됐죠. 이번 앨범을 통해 K팝의 원류를 따라가 보는 느낌을 내고 싶었습니다."

그는 "팝페라 가수로서 대중음악이냐 순수음악이냐 하고 그 정체성을 구분 짓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음악에는 경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원래도 했지만, 이번 음반을 계기로 다시금 하게 돼 무척 뜻깊은 작업이었다"고 강조했다.

임형주는 국내 팝페라의 저변을 넓히고자 세계 최초로 서울 한남동에 지어지는 팝페라 전용 공연장의 초대 이사장도 맡았다. 또 로마시립예술대학 성악과 석좌교수 자리를 수락한 것도 그간 받은 사랑을 후학 양성으로 갚자는 취지에서였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고민거리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히트곡'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만큼의 히트곡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악가에게 남는 것은 결국 히트곡이기에 국민 애창곡으로 불릴 만한 노래가 한 곡쯤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슬픈 노래가 아니라 조수미 선배님의 '챔피언스'(Champions)처럼 밝고 희망적인 히트곡이 나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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