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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제로코로나 교조주의" 들이받은 "말년총리" 리커창

연합뉴스 입력 05.27.2022 02:50 PM 조회 1,347
시 절대 권력 속 소신 행보 평가되나 소수파 한계 명확
제로코로나 근본 수정 시도는 못해…"경제 구하기, 불가능한 임무"
리커창 총리(왼쪽)와 시진핑 주석(오른쪽)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중국공산당 내 소수파이자 내년 3월 퇴임할 '말년 총리' 리커창이 절대 권력자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도해온 '제로 코로나' 정책이 극단으로 치달아 자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소신 행보에 나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이를 명목상 권력 서열 일·이인자인 시 주석과 리 총리 사이의 '권력 암투'의 시각에서 보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미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절대 권력을 확보한 시 주석이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미화된 '제로 코로나'를 여전히 꽉 움켜쥔 상황에서 방역과 경제 사이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리 총리의 '역설'이 성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지난 25일 열린 중국 국무원의 경제 안정을 위한 전국 화상 회의는 리커창 주도의 당내 정치 시위 성격이 매우 강했다.

성·시급 지방 정부의 경제 책임자뿐만 아니라 말단 현·구 지방 정부 책임자들까지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리커창은 자국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도 더욱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고 선언하는 '충격 발언'을 통해 방역 지상주의가 더는 경제를 망쳐놓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성경'과 같은 당의 공식 지침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발언을 하는 것이 정치적 생명에 매우 위험하게 작용할 수 있는 중국에서 대표적 '시진핑 표' 정책으로 간주되는 '제로 코로나' 집행 방식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소신 행보'로 평가된다.

리 총리가 이날 회의에서 한 발언은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를 통해 '순화되어' 전해진 것보다 훨씬 더 직설적이었다고 한다.

회의 참석자들을 통해 중국 인터넷에서 퍼진 발언록을 보면, 리 총리는 "경제가 합리적 범위 밖으로 이탈할 위험이 있다"며 "우리나라처럼 큰 나라의 경제가 계속 일정한 속도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회복에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당장 2분기에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올해 성장률 목표가 연초에 정한 5.5%보다 훨씬 더 낮아졌다면서 올해 5.5%의 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고 처음 언급하기도 했다.

리 총리는 또 4월 실업률이 6.1%로 오른 것을 가리키면서 이런 상태가 3개월 이상 지속되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안팎에서는 당내 소수파로 실권이 거의 없는 '바지 총리'로 알려진 리 총리가 4월 주요 경제 지표 추락으로 당내 위기감이 고조된 상황을 활용해 과감하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커창 총리 [신화=연합뉴스 자료사진]





물론 '제로 코로나 폭주'를 우려하는 것이 리 총리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 한정 부총리, 후춘화 부총리, 류허 부총리 등 최고위 경제 책임자들과 10만명 이상의 지방 정부 책임자들이 대거 참석한 사실은 중국공산당과 정부 안에서도 당면한 경제 위기의 심각성에 관한 인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리 총리가 위기에 빠진 자국 경제 구하기에 나섰지만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나타나기는커녕 오히려 날로 강화되는 추세라는 점에서 리 총리가 주장하는 '방역·경제 병진' 주장이 현장에서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많다.

리 총리 자신도 이번 회의에서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을 뿐이지, '제로 코로나' 정책 자체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은 아니었다.

시 주석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의 최우선 정책 목표가 '제로 코로나'라는 사실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리 총리의 '경제 사수 명령'이 경제 일선 간부들에게 잘 먹혀들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 방역 실패에 관한 '즉결처분'식 문책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일선 간부들은 자신이 맡은 지역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코로나19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블룸버그 통신은 "기층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많은 정부 관료들은 코로나19 발생을 막으라는 시 주석의 계속되는 강조와 경제를 부양하라는 리 총리의 말 중 어느 것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며 "지방 정부와 금융 당국의 고위 관리들의 전언에 따르면 이런 딜레마는 나라를 마비 상태로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

대외적으로는 권력 서열 1·2위로 묘사되지만 실제 중국에서 시 주석과 리 총리의 권력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차이가 난다.

중국 안팎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던 지난 25일 국무원 화상 회의 소식도 다음날 인민일보에서는 1면 오른쪽 구석에 사진 없이 제목과 리드 문장만 조그맣게 실렸을 뿐이고 정작 본문은 독자들의 눈이 잘 닿지 않는 4면으로 밀렸다. 이날 인민일보 1면에는 시 주석의 동정을 실은 기사와 사진으로 가득 찼다.

이처럼 절대권력자인 시 주석의 위대한 업적으로 포장된 '제로 코로나의' 벽이 공고한 상황에서 리 총리의 경제 살리기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리서치 회사 트리비움 차이나의 공동 설립자인 트레이 맥아버는 블룸버그에 "경제에 가장 큰 충격을 주고 있는 정책을 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커창)는 경제를 구해야 하는 불가능한 자리에 앉아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무원 회의에서 특별국채 발행 등 시장이 주목할 만한 재정·통화 추가 부양책도 언급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제로 코로나'가 중국 경제를 짓누르는 거의 절대적인 요소가 된 상황에서 웬만한 통화·재정정책 수단을 동원한 경기 부양도 의미가 약해졌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중국 베이징의 싱크탱크인 안바운드는 "얼마나 많은 경제 부양 조치가 나와도 강경한 방역 정책에 조정이 없다면 정책 효과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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