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코리아 창사 32주년 특별 이벤트

32년간 받은 사랑, 이제 우리가 돌려드릴 차례입니다.

"한 장의 행복"

사연 보기

"라디오 코리아가 찾아준 금고"

정두영 님의 사연
<체크수령 인증사진>
정두영 님 사연 당첨을 축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미국에 온지 올2월로 35년이 지났으니 라디오 코리아보다 한 3년 선배쯤 되겠네요.

89년 라코 창사후 초기 몇년간을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면 라코의 존재감을 확고하게
심어준 변곡점은 역시 92년에 발생한 4/29 폭동이라는데 이의를 다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당시에 정규방송을 모두 중단하고 24시간 폭동 상황 생방송을
광고없이 실시해 한인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함으로써,
LA를 비롯한 전 미주 교포들에게 확고한 신뢰와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족한 영어와 정보의 한계 때문에 답답하고 초조해 하던 교포들에게
라코의 생생한 현장 생방송은 그야말로 칠흑같은 어둠속에 한줄기 빛이었습니다.

폭동 당시에 저는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 위치한 스왑밋에서 Fine Jewelry 가게를
운영중 이었습니다. 4/29일 밤 TV로 폭동 상황을 지켜보던 중 저희 스왑밋 건물이
불타는 화면을 접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샌뒤, 위험을 무릅쓰고 동트기전 어스름한
새벽길을 달려 불타서 뼈대만 남은 가게를 확인하다가,
제 전재산이 담긴 금고가 비스듬히 옆으로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폭도들이 금고 다이얼을 부수고 모서리 철판을 뜯은 흔적은 있지만
워낙 단단하고 무거워서 어쩌지 못한것 같았습니다.
이제 곧 날이 밝으면 폭도들이 다시 몰려올텐데 어떻게 저 금고를 안전하게
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제 지인 중에 마침 용접일을 하는 분이 있어서
바로 연락을 해서 사정을 설명하니,
그분이 절단기와 산소탱크를 싣고 달려오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라코에서는 한인 자경대와 해병 전우회가 주축이 되어서
한인타운 곳곳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고 있는 중이라는 뉴스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없이 라코로 전화를 돌려서 어렵사리 연결된 직원분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 직원분은 “알았습니다 바로 해병 전우회로
연락해서 라코 주차장에서 조우하는걸로 할테니 지금 바로 라코 주차장으로 오시라”고 했고,
전 그 길로 올림픽길 선상 알바라도 쯤에 위치한 옛 라코 건물로 향했고
거기서 이미 도착한 네 명의 해병 전우회분들을 만났습니다.

얼룩무늬 군복에 소총으로 완전무장한 그분들과 트럭등에 나눠타고 현장으로 달려가니,
불탄 건물 주변엔 벌써 폭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죠.
곧바로 해병분들이 앞에총 자세로 금고를 중심으로 사주경계에 들어가고
금고 절단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4/30일 오전 그렇게 무지막지한 폭도들도 우리 해병분들의 위용앞에
큰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더군요.

그로부터 한시간여 작업끝에 마침내 금고가 열렸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폭도들과의 일촉즉발의 긴장감 속에서
무사히 금고속의 물건들을 챙겨서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같은 민족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어떤 위해가 가해질지 모를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주저없이 출동해준 해병전우회 분들에게 말할수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경황없는 와중에서도 침착하고 신속하게 해병전우회 분들의 지원을 연결해 주신
라디오 코리아 직원분(워낙 급박해서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이 아니었다면
저는 금고를 확보하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나락에 빠졌을 겁니다.

저는 폭동이 끝난 이후 6개월동안 새로운 터전을 찾아 헤매다가
안전하고 조용한 이곳 가게를 새로 오픈해서 올해로 28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문제의 금고에서 회수한 화재에 그을린 물건들이 초석이 된것은 말할것도 없지요.

돌이켜보면 라디오코리아에 제가 진 빚이 작지 않지만 어떻게 갚을 기회도 방도도 없네요.
할 수 있는 거라곤 가게 문열고 닫을때까지 라코
방송을 듣고 보면서 마음속으로 응원하는것 뿐인가 합니다.
올해로 32주년을 맞은 라디오코리아,
아무쪼록 앞으로도 50년,100년 한인커뮤니티의 구심점이 되어
번영과 발전을 이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