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는 성인용 어른만 보긴 아까운 이유

글쓴이: 케세라세라  |  등록일: 04.07.2016 14:44:39  |  조회수: 4117
주토피아', 몽타주만 보고는 딱 어린이용이구나 했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사랑스러운 토끼에 썩소를 날리는 교활한 여우(미안해 닉!), 거기에 동물원(Zoo)과 이상향(Utopia)을 합친 제목이라니. 역시 디즈니다 했다. 소녀들에게 '겨울왕국' 공주님 인형을 신나게 팔아먹고, 소년들에게 '빅 히어로' 베이맥스 로봇을 갖다 안기게 한 장사의 귀재가 이번엔 동물원·사파리에 목숨을 거는 꼬맹이들을 겨냥했구나. 꼼짝없이 당하겠구나 싶었다.

허나 왠걸. 꼼짝없이 당한 건 따로 있었다. 아이 손에 끌려 극장에 다녀와선, 이젠 애들 손을 제가 끌고 극장으로 향하는 성인들이다. 주위에도 수두룩한 그런 어른들은 어딘가 홀린 듯 두 손을 모아쥐고 "이건 애들용이 아니야", "나를 위한 영화야"를 되뇌곤 했다. 물론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당장 내 노트북만 켜 봐도 토끼와 여우의 커플 사진이 떡 하니 대문을 차지하고 있으니. 검색 내역을 뒤지면 ''주토피아' 명대사 및 동영상', '주디와 홉스의 발전 가능성', '홍당무 볼펜 직구법' 등등이 쏟아져 나올 거다.

이런 열정적인 홀릭들 덕에 지난 2월 개봉 첫 주 겨우 4등에 올랐던 '주토피아'는 '검사외전', '데드풀', '귀향', '배트맨 대 슈퍼맨'이 뜨고 지는 동안에도 꿋꿋이 사랑받으며 잔혹한 봄 극장가를 지나고 있다. 지난 5일엔 기어코 DC 영웅 연합을 꺾고 다시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극심한 관객 가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따져보면 그 와중이니 더 놀랄 일이다.

'주토피아'는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어우러져 사는 도시의 이야기다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을 딛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된 주디 홉스, 그리고 얼결에 주디와 엮인 여우 사기꾼 닉 와일드는 함께 연쇄 실종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가만 보면 반전을 거듭하는 박진감 넘치는 범죄 스릴러다. 더 들어가 보면 현실을 꼭 닮은 주토피아는 그 자체가 현실 세계에 대한 통렬한 우화이자 풍자다.


'주토피아' 스틸컷 / 사진=디즈니
'주토피아'는 토끼는 귀엽고(혹은 귀여워야 하고), 여우는 약삭빠르며(혹은 약삭빨라야 하고), 육식동물은 언제든 야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당사자들에게 얼마나 아픈 편견일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운다. 동시에 '나는 너의 상처를 안다'고 가만히 어깨를 다독인다. 실재하는 차별과 편견을 견디며 혹은 애써 외면하며 괜찮은 듯 지내는 이들의 가슴에 더 와 박히는 위로다. 그 미덕을 세상 쓴맛 따위 모르는 꼬맹이들이 어찌 알겠나.

하지만 그래서 '주토피아'는 꿈 많은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더없이 좋은 애니메이션이다.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도 수십 번 같고 다른 고민을 곱씹지만 몇몇 참 어려운 것들이 있다. '나는 커서 노래박사가 될 거야'라는 티없는 꼬마 녀석에게 '어떤 꿈이든 꾸라'고, '넌 뭐든 될 수 있어'라고 그저 응원하는 게 과언 잘 하는 것일까, 같은 것들. 사실 언젠가 알려줘야 한다.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단다. 널 알아봐 주지 않을 수도 있단다. 이유없이 널 못살게 구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단다. 꿈을 혹시 못 이룰 수도 있단다. 설사 이루더라도 네가 꿈꾸던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단다. 그래서 상처받을 수도 있단다. 거꾸로 네가 남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단다….'

'주토피아'는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던 그런 이야기들을 슬그머니 대신 해준다. 그것도 딱 아이들에게 맛 보여도 될 만큼만 쌉쌀하게. 동시에 '마음을 열면 여우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괜찮으니 뭐든 해 보라'는 응원까지 곁들인다. 물론 미덕은 그 말고도 많다. 으르렁거리다 결국 '남사친''여사친' 버금가는 콤비가 된 주디와 닉은 얼마나 멋진가. "토끼끼리는 귀엽다고 해도 되지만 다른 동물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다"는 똑 부러진 주디의 멘트는 또 어떻고. 다같이 춤추며 즐기는 가젤 언니의 노래를 들으며 극장을 나가는 길 기어코 "트라이 에브리씽!"을 웅얼거리게 만드는 디즈니, 역시 원조 명가의 저력이다.

덧붙이자면, 이건 '네가 반한 그 남자는 나쁜 놈일지 모른다'면서 '두려워 말고 네 꿈을 펼치라'던 '겨울왕국'보다도 한 수 위다. 씩씩한 공주님도 물론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2016년엔 12살부터 생계를 책임지거나 착실히 꿈을 위해 노력해 온 씩씩한 흙수저들에게 왠지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말인데, 금주 주말 아이 손을 붙잡고 딱 한 번만 더 '주토피아'를 보러 갈 생각이다. 정말 딱 한 번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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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귀욤현수  04.08.2016 10:41:00  

    강추합니다!!!

  • peaminc  04.10.2016 08:58:00  

    예전에 UP 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애들용으로 보기 시작했다가 그 내용이 우리 인생을 잘 담아서 참 감동적으로 봤는데 안보신 분들은 꼭 보시길....주토피아를 오늘 보러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