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칸 수상 불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

연합뉴스 | 입력 05/25/2018 09:29:17 | 수정 05/25/2018 09:2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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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

[CGV아트하우스 제공]

 


"칸 수상에 흥행 성패가 달린 것처럼 돼…국내 반응은 저에게도 숙제"
 

"당연히 아쉽지요.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고, 아쉬운 정도가 아니죠. 칸에서도 황금종려상 이야기가 계속 나왔어요. 만약 수상했으면 한국영화 전체에 자극이 되고 활력도 됐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죠"

 

8년 만의 복귀작 '버닝'과 함께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고 돌아온 이창동 감독이 25일 수상 불발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버닝은 다수의 현지 매체들로부터 경쟁작 중 최고라는 평을 받는 등 강력한 황금종려상 수상 후보로 점쳐졌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고 '번외'라고 할 수 있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과 벌칸상을 수상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언론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 "전혀 원하지 않았지만 '버닝'의 흥행이 칸 수상 여부에 달린 것처럼 돼 버렸다"며 "칸에서 수상했으면 힘을 좀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감독으로서 같이한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버닝'은 칸영화제 소식지 스크린데일리로부터 역대 최고점인 3.8점을 받은 등 프랑스 현지에서 걸작이라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 감독은 오히려 호평 일색인 점이 의아할 정도였다고.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들어가는 영화는 꼭 예술영화라기보다 개성이 강한 영화들이 뽑혀요. 개성이 강하다는 것은 호불호가 나뉜다는 거죠. 그래서 저도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 좋다고 하는 게 오히려 이상했어요."

 

그러나 프랑스 현지 반응과 달리 국내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16일 개봉한 '버닝'의 누적 관객 수는 전날까지 39만9천963명에 그쳤다. 이는 22일 개봉한 '독전'의 절반에 불과한 숫자다.

 

이 감독은 "국내서도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국내에서는 또 예상외로 프랑스하고 온도 차이가 큰 것 같다"며 "국내 반응은 저한테도 좀 숙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

[CGV아트하우스 제공]

 

 

이 감독은 '버닝'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의 분노와 미스터리에 주목했다. 암울한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분노의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미스터리가 작품 전반에 깔린 정서다.

 

"꼰대 같은 얘기지만 저희 때는 답이 분명했어요. 계급의 문제든, 민주화의 문제든 답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분명 잘못됐는데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죠. 세상이 미스터리 같아요. 저한테도 그렇고 청년에게도 그럴 것 같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이 감독은 질문을 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흔히 이 감독은 메시지가 강한 연출가로 알려졌지만, 단 한 번도 영화에 메시지를 담은 적은 없다고.

 

"메시지나 답을 찾는 것은 관객의 몫이지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메시지는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가장 강하고 알기 쉽죠. 정의는 승리하고 착한 것이 아름답다는 식의 메시지는 하나마나죠. 오히려 질문하고 관객이 거기에 답을 찾거나,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은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는 언제까지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도 지나면 쉽게 잊혀지지만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연결되면서 영속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에서 이 감독은 다층적인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젊은이의 분노와 현대 사회의 미스터리에 대한 질문뿐 아니라 '서사란 무엇인가','영화라는 매체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작품에 녹아있다.

 

이 감독은 "서사나 영화 매체에 대한 질문까지 넘어갔으니 질문이 복잡해지기는 했다"며 "관객이 복잡하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 저런 것 다 비우고 있는 그대로만 즐길 수도 있는 영화"라고 말했다.

 

전작들에 비해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는 평에 대해서는 "전작들도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항상 변화를 시도해왔다"며 "다만, 이번 변화는 조금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 감독은 유아인과 스티븐 연 등 출연배우들을 둘러싼 영화 외적인 논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유아인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바 있고, 스티븐 연은 '버닝' 개봉 직전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구설에 올랐다.

 

이 감독은 "외적인 논란이 안타깝지만 제가 개입할 문제는 아니다. 제가 감독이라고 해서 선생님처럼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각자의 몫이고 본인들이 받아들이고 통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티븐 연은 본인이 굉장히 당황했지만,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더라"고 덧붙였다.

 

최승호 현 MBC 사장이 극 중 종수 아버지역으로 출연하게 된 일화도 소개했다.

 

이 감독은 "종수 아버지를 배우 중에서 찾기보다 현실에서 찾고 싶었다"며 " 본인에게 실례일지 모르겠으나 최 PD가 왠지 종수 아버지 같았다. 본인에게 이야기하니 본인도 그럴 수 있겠다고 수긍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