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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LA폭동 24년....방화와 약탈, 참혹했던 기억

김혜정 입력 04.29.2016 06:34 AM 수정 04.29.2016 07:46 AM 조회 15,130
[앵커멘트]

폭동의 검은 연기속에
한인들의 어메리칸 드림을 빼앗아 가버린 그때를 기억하십니까  ?

오늘은 한인이민역사에서 가장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4.29 폭동이 발생한지 24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처참했던 4.29 폭동을 되돌아봤습니다.

김혜정 기자입니다.

[리포트]

(효과음)

지난 1992년 4월 29일,
흑인 밀집 지역인 사우스센트럴을 시작으로
한인타운까지 급격하게 번진 LA 폭동.

발생 닷새만에 무려 57명이 숨지고 2천 500 여명이 부상하는 등
5천 건이 넘는 동시다발적인 방화로
한인타운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했습니다.

(녹취) 당시 피해자: 이거는요 다 시커멓게 타가지고 가게 음식이고 술이고 모조리 훔쳐가지고 불 질러 버렸으니까 바닥에 불에탄 동전 몇 개만 떨어져있는데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벌렁거려요
 
사건은 지난 1991년 경찰의 정지 명령을 무시하고 질주하던 로드니 킹이  백인 경찰들에게 붙잡혀 무차별 구타 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1년 후 사건의 가해자인 백인 경찰 4명이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으며
이에 격분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것입니다.

(녹취) 당시-시위현장

4월 29일 밤을 전후해 LA 한인타운까지 진출한 흑인들이
무차별 약탈과 방화를 자행한 한인 업소는 모두 2천 8백여 곳.

피해액만도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등
한인들은 4.29 폭동의 가장 큰 피해자로 남겨졌습니다

일부 한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피해 최소화를 위해 애썼지만
당시 19살 청년, 이재성군이 오인사격으로 사망하면서
한인사회내 폭동의 공포는 극에 달했습니다.

(녹취) 당시-현장뉴스,자경단,이재성군 추모
 
폭동이 발생한 후 라디오코리아는 모든 정규 프로그램 방송을 중단한 채 피해파악등 긴급상황 본부로 운영됐고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도 라디오코리아를 방문해
망연자실해 있던 한인들을 위로했습니다.

(녹취) 당시-생방송.
 
4.29 폭동이 발생한지 24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LA 한인들은 당시의 아픔을 뒤로한 채
정치적, 사회적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피땀으로 일군 생활터전을 잿더미로 만든 4.29 폭동이
당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도미했던 한인들에게는
아직까지 쉽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녹취) 4-5시쯤 나와서 건물들 다 불 타는거 보면요 그냥 폐인되는거에요 //4.29 폭동 나면서 ..아 여기서 나 계속 살아야 하는가? 어차피 우리들은이 사람들이랑 계속 보면서 지내야하는거니까
 
라디오코리아 뉴스 김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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