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만나다] 세계 최대 카지노·호텔 경영자 개리 러브맨 시저스 엔터테인먼트 회장 <1>

“올인.”

남자는 짧게 한마디를 던진다. 녹색 테이블 위에 수북히 쌓인 칩들을 앞으로 모두 밀어넣으며 하는 말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는 가진 전부를 베팅한다. 그리고 이긴다. 지고 있던 승부처에서 두둑한 배짱으로 상황을 순식간에 역전시켜 버린 것이다. 딜러와 다른 플레이어들이 얼이 빠진 표정을 하고 있는 사이 그는 돈가방을 챙겨 유유히 사라진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화와 드라마에 나오는 갬블러 주인공의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은 현실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승률 1%를 생각하며 모든 걸 걸지만 실패할 확률 99%의 범위를벗어나기란 어렵다. 물론 TV는 실패한 이후의 결과는 결코 보여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걸고 잃었을 때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빈곤의 대물림, 관계의 단절, 약물과 알코올 중독, 그 후 펼쳐지는 잿빛 세상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서는 이런 소리가 자주 들린다.  

“인생 뭐 있어,한 방이지.”

들을 땐 화끈하고 멋있어 보인다. 그렇게 보면 다들 째째하게 살아가고 있는 거 같다. 인생의 문제가 한 방으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지만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 로토나 카지노, 주식 시장을 기웃 거려 보지만 이길 확률이 아주 낮고 감당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곳은 어느 도시일까. 마카오를 떠올리는 이도 있겠지만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라스베이거스를 주저함 없이 꼽는 사람들이 가장 많으리라.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밤낮 없이 불켜진 호텔들 마다 슬롯머신이 돌아가고 심지어 길거리와 공항에서 유혹의 손길이 멈추지 않는 도시이다. 

라스베이거스는 인류사에 걸친 인간의 욕망을 녹인 도시답게 세계 유명 관광지를 축소해 놓았다.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피라미드를 본뜬 럭소(Luxo), 로마 제국의 영광을 재현해 놓은 시저스 팰리스, 지중해의 꽃 모나코의 몬테카를로, 자유 여신상이 햇불을 들고 있는 뉴욕뉴욕, 이태리 수상도시 베네치안을 본뜬 베네치안, 에펠탑이 서있는 파리스, 북이탈리아 호수를 이미지화한 벨라지오, 초현대식 공법으로지은 아리아…. 

라스베이거스를 방문할 때마다 이 거대한 호텔들과 전세계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카지노 호텔의 수장은 누구일까 참으로 궁금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스트립(Strip) 대로를 사이에 두고 수십 여개의 특급호텔이 즐비하게 있지만 사실은 딱 3개의 그룹 밖에 없다. 시저스팰리스를 포함해 해라스, 플래닛 할리우드, 파리스, 플라밍고, 발리스, 리오 등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카지노·호텔 그룹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이하 시저스)’과 이에 맞서 MGM 그랜드, 벨라지오, 아리아 등을 갖고 있는 MGM 그룹이 선두 뒤에서 바짝 쫓고 있다. 마지막으로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전설인 스티브 윈(Steve Wynn)이 만든 초특급 호텔 ‘윈 라스베이거스’을 기반으로 한 호텔 그룹이 3파전을벌이고 있다. 

3개 그룹 가운데 최대인 시저스 그룹의 CEO이자 회장인 개리 러브맨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섭외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 주변에는 많은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시저스 호텔만 생각했던 나는 러브맨 회장이 전세계 50여 개 카지노 호텔과 7개의 럭셔리 골프코스에서 연간 90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그룹의 수장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 업계는 그동안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왔다. 시저스 그룹은 그동안 수십년간 1위의 호텔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스티브 윈이 자신의 이름을 딴 호텔 윈을 짓기 위해 벨라지오가 포함된 미라지 리조트 그룹을 MGM 그룹에 매각하면서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2위로 밀린 위기상황에서 시저스 호텔 그룹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였던 개리 러브맨을 영입한다. 그는 세계적인 학문적 명성과 하버드라는 브랜드를 내려놓고 속칭 ‘카지노 업계’로 불리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몇 년간 카지노 산업을 지켜보며 분석에 열중한 그는 2003년 CEO에 오르자 라스베이거스 사상 최대의 ‘쩐의 전쟁’을 감행한다. 오직 두 개의 호텔 그룹이 서로 주도권을 쥐어야 하는 게임. 절대 밀려서도 말려서도 안되는 게임에 러브맨 회장은 전면에 나서서 가장 중요한 고객을 공략해 나간다. 그 결과 10년간의 전쟁 끝에 시저스 그룹은 MGM 그룹의 아성을 누르고 다시 업계 1위에 올라섰다. 

시저스 팰리스, ‘시저의 황궁’이다. 로마시대를 기본 컨셉으로 하얀 대리석의 건물이 절제된 직선으로 표현돼 라스베이거스 스트립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다. 로마 양식으로 지어진 ‘신의 정원’ 수영장은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최고로 불린다. 한국 중년세대에겐 82년 세계 타이틀매치에 도전했다 경기 직후 사망했던 김득구 선수의 경기가 벌어진 호텔로 잘 알려져 있고, 젊은 층에겐 월드스타 비가 공연한 호텔로 잘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러브맨 회장을 기다리는 나는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러브맨의 승부수는 도전이었을까, 도박이었을까. 어떻게 해서 2등 기업에서 1등 기업으로 올라섰을까. 잠시 뒤 비서실의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 라스베이거스에 올 수 없다면서 가능하다면 전화인터뷰라도 가능하겠느냐면서, 대신 시간은 충분히 드리겠다며 죄송하다는 양해의 말씀과 함께. 

그 때 처음 알게 되었다. 러브맨 회장이 동부 보스턴에 살면서 개인 제트 비행기를 타고 라스베이거스로 통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별 대안이 없었다. 나중에 미루면 시간이 언제 잡힐 지 몰랐다. 보스턴에서 달리는 리무진 안에 있는 러브맨 회장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나는 첫 질문을 시작했다. 

“하버드대 경영학 교수 출신이었는데 어떻게 카지노 산업으로 가게 됐나요.”

“흔치 않은 스토리이죠. 하버드 MBA 교수로 있을 때 해라스 호텔 그룹(시저스 전신)의 컨설팅을 수년간 해 준 일이 있어요. 한 번은 해라스 그룹 창립자가 저녁 초대를 했는데 나에게 같이 일하자는 제의를 해 왔어요. 그동안 자신의 회사를 위해 경영 전략을 세우는 일을 당신이 가장 알고 있으니 이론 대신 직접 실행해 달라는 말이었지요. 상당한 도전이었지요. 고민 끝에 수락했지요. 1998년 해라스 그룹(시저스 그룹의 전신)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03년에 최고경영자(CEO)를 맡게 됐습니다.”

도전과 도박은 어떻게 다를까. 도전의 사전적 의미는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걸다, 어려운 사업이나 기록 경신 따위에 맞섬을 비유적으로이르는 말이다. 도박의 의미는 요행수를 바라고 불가능하거나 위험한 일에 손을 대는 일, 금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일을 말한다. 기량을발휘하기 보다는 우연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도전과 도박은 다르다. 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무모해 보이더라도 도전에 해당한다. 도박은 한방이다.

그가 하버드 경영학 교수의 타이틀을 내려놓고 갬블 기업으로 적을 옮긴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도박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공, 실패 여부를 떠나 고색창연한 전통과 엘리트 의식을 가진 하버드 교수사회에서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도전이었다. 고객관리이론, 게임이론의 권위자에서 실천가로, 2등 기업을 1등 기업으로 올라서는 전략을 실행해 볼 수 있는 기업가로 한번도전해 볼만한 가치를 느낀 것이다. 

“상당히 다른 직종이라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아주 많이 달랐죠. 하하. 공통점이 거의 없어요. 그러나 두 직업 모두 매력 있는 일입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좋았지만 거대한 기업을운영해보는 일도 아주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계에서 먼저 일한 것이 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가 변하고 있는 환경에 주목했다. 외부 환경이 변하는 데 기업도 이에 맞춰 변해야 했다. 특히 카지노 호텔의 특성상 발빠른 대처가 필요했다. 라스베이거스는 이제 더 이상 ‘도박의 도시’로 불리지 않는다. 도박에서 얻는 수익보다 컨벤션으로 발생하는 수익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미국 동서남북 접근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과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미국 최대의 컨벤션 도시로 발돋움 했다. 

또 전세계 최고급 레스토랑과 무제한 호텔 뷔페가 있어 가장 싼 음식부터 비싼 음식까지 맛 볼 수 있는 요리의 도시이자 세게 모든 명품 브랜드가 진열돼 있는 각종 상점들과 호텔마다 상설 공연장을 갖춘 ‘태양의 서커스’로 인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러브맨 회장은 이 같은 도시의  변화를 정확히 읽었다. 

“라스베이거스는 지난 1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가장 큰 변화는 도박이 아닌 활동(non-gambling)이 크게 늘어난 점입니다. 호텔마다 더 많은 소매점과 스파·레스토랑이 들어섰고 공연, 컨벤션 등에 대한 비중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도박 도시도 엔터테인먼트를 피해갈수는 없어요.”

러브맨 회장은 고객을 자세히 분석했다. 적보다는 고객을 먼저 알아야 했다. 그래야 공략 포인트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토털 리워즈 프로그램’을 창안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시절 연구하던 고객관리이론을 카지노 기업에 도입해 만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카지노 고객에게 마그네틱 카드인 로열티 카드를 지급해서 게임을 할 때마다 기록을 남겨 카지노를 자주 찾거나 게임을 많이 할수록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서비스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 해라스(시저스의 전신)는 MGM을 추격하는 계기로 삼았다. 

러브맨 회장은 말했다.

 “토털 리워즈 게임을 만든 것은 카지노를 찾는 고객을 알 수 있는 일종의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매번 고객이 게임을 어떻게, 얼마나 하는지 알게 되면 그 고객에 맞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는 해라스만의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도 전 세계에서 확대 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