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기사]원석이라 쓰고 류준열이라 읽는다

글쓴이: 케세라세라  |  등록일: 10.11.2017 13:35:29  |  조회수: 400
©이우일 그림

1000만 영화 <베테랑>에서 차량 통제 스태프로 엔딩 크레디트 끄트머리쯤에 이름 석 자를 올렸던 청년이 있다. 그는 2년 뒤 또 다른 1000만 영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이 됐다. 한때는 단역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무명의 배우가, 단숨에 대중과 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충무로의 신예로 우뚝 섰다. 그가 맞은 영광의 순간을 행운으로만 보는 서술은 온당하지 않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더 빨리 잘되겠다는 조급함도 없이 묵묵히 걸어온 배우 류준열의 시간을 지우기 때문이다.

대다수 연예인의 데뷔 나이 마지노선이 20대 초반인 것과 달리, 류준열의 시작은 늦었다. 재수 시절에야 비로소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범대 진학을 준비했던 그의 진로 변경은 다소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일화에서 시작됐다. 졸지 않으려고 서서 공부하다 잠깐 눈을 붙였는데 두 시간이 지나 있었고, 이때 ‘활동적인 일이 적성에 맞을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 영화 보기를 좋아했다. 입시 실기 준비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배우라는 낯선 길에 들어서는 데 주어진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의 말마따나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성격’으로 집중하고 노력한 끝에 결국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짧지 않았던 무명 시절 류준열은 커피숍, 고깃집, 공연장, 피자 가게, 일용직 노동, 방과 후 교사 등 숱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소속사가 없어서 직접 만든 명함을 들고 다녔으며,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빌린 의상을 반납하기 위해 캐리어를 끌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안하지 않았다. 배우를 ‘하루 이틀 하고 말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커플 남자’(단편 <노웨어(nowhere)>), ‘클럽남’(단편 <동心>), ‘체육관원’(<잉투기>) 등 이름 없는 배역으로 관객들을 만났던 그가 처음 주목받은 시기는 남들과 비교하면 꽤 늦은 편이었다. 서른이 되던 해인 2015년, <소셜포비아> 개봉과 함께 찾아왔다. 독특한 의상, 눈에 띄는 치아교정 장치, ‘어디서 진짜 BJ 데려온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만큼 맛깔 나는 말투가 어우러진 ‘양게’ 역을 완벽하게 소화함으로써 ‘눈 밝은’ 업계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각인시켰다.

줄줄이 대박 신화를 쓴 tvN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 편인 <응답하라 1988>(응팔)을 준비 중이었던 신원호 PD도 눈 밝은 이 가운데 하나였다. “양게 데려와.” 신 PD의 한마디에 제작진을 만나게 된 류준열은 세 차례 이어진 오디션을 거쳐 출연진으로 합류했다. 마지막 오디션 당시 신 PD가 류준열의 손바닥에 ‘원석’이란 두 글자를 써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배우 하루 이틀 하고 말 게 아니니까”

이후 류준열의 행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까칠해 보이지만 공부도 친구관계도 원만한, 무엇보다 좋아하는 소녀에게 순애보를 품은 소년 김정환으로 변신해 대중을 사로잡았다. 덕선을 향한 의미심장한 미소가 등장했던 1화부터 유력 남편 후보로 급부상하더니,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모두를 궁금하게 한 ‘덕선 남편’은 다정한 천재 바둑기사 택의 차지였지만, 응팔이 낳은 가장 핫한 스타는 단연 류준열이었다.

류준열은 일에만 집중했다. 응팔 종영 후 반년도 되지 않아 지상파 미니시리즈 <운빨 로맨스>의 주연을 꿰차, 관계 맺기에 공포를 느끼다 스스로의 틀을 깨고 사랑을 배우는 제수호를 멋지게 연기해냈다. 의리파 조직폭력배 두일(<더 킹>)과 5·18 민주화 항쟁을 겪은 대학생 재식(<택시운전사>) 으로 영화 쪽으로도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다.

<침묵> <리틀 포레스트> <돈> <독전>까지 차기작만 4편. 이제 류준열은 충무로에서 가장 반짝이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길게 할 일’이므로 남들에 비해 한참 처진 듯한 출발에 개의치 않았고, 당장 연기를 ‘잘’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다. 1986년 9월25일 태어나 올해 서른두 살이 된 류준열은 그렇게 일찌감치 느긋함을 깨달았다.

중림로 새우젓 (팀명) webmaster@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
©시사IN,
DISCLAIMERS: 이 글은 개인회원이 직접 작성한 글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이 내용을 본 후 결정한 판단에 대한 책임은 게시물을 본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라디오코리아는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보증하지 않으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라디오코리아의 모든 게시물에 대해 게시자 동의없이 게시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 등의 행위는 게시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하는 경우 저작재산권 침해의 이유로 법적조치를 통해 민,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This article is written by an individual, and the author is full responsible for its content. The viewer / reader is responsible for the judgments made after viewing the contents. Radio Korea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e articles and assumes no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using the information. In principle, all posts in Radio Korea are prohibited from modifying, copying, distributing, and transmitting all or part of the posts without the consent of the publisher. Any modification, duplication, distribution, or transmission without prior permission can subject you to civil and criminal liability.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