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바람 여자 돌, 그리고 쓰레기.. '청정의 섬' 제주 오명

글쓴이: 사노라면unga  |  등록일: 09.06.2019 15:14:33  |  조회수: 266
플라스틱, 비닐 등 버려진 쓰레기를 열분해해서 연료를 만들어내는 제주클린에너지의 김태윤 대표가 공장 마당을 가득 채운 쓰레기 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년 동안 이 공장으로 실려온 뒤 처리하지 못하고 쌓인 양이 1,000톤에 이른다고 했다. 결국 그는 지난달 초부터 더 이상 쓰레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제주, 1인당 쓰레기량 전국 1위… 관광객ㆍ인구 늘며 8년 새 2배 급증

폐기물 재활용 회사마저 “쓰레기 포화” 지난달부터 수용 거부

가을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달 29일 제주시 봉개 쓰레기 위생 매립장. 정체를 알 수 없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사이 쓰레기를 실은 트럭들이 오가고 저 멀리 흰색 비닐을 둘러싼 거대한 덩어리들이 끝도 없이 줄 지어 있다. 덩어리의 정체는 쓰레기. 원래 태워야 할 쓰레기지만 소각장의 처리 용량이 부족해 압축한 상태로 쌓여 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현재 제주도 곳곳에 압축된 형태로 쌓여 있는 쓰레기만 9만 톤이 넘는다.

더구나 이 곳은 이 쓰레기들이 있으면 안 되는 곳. 쓰레기 더미 아래 땅 속에도 쓰레기가 한 가득 묻혀 있다. 제주환경연 김정도 정책팀장은 “올해 2월 매립 용량(231만9,800㎥)을 다 채웠기 때문에 사실 더 이상 쓰레기를 묻어서는 안되지만 지금도 음식물자원화시설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고 남은 찌꺼기를 톱밥과 섞어 매립하고 있다”며 “원래 인근 소각장에서 태워야 하지만 매일 밀려오는 생활 쓰레기 소각하느라 음식물 쓰레기는 손도 못 대고 파묻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재활용품 선별장에서 나온 잔재물이나 재활용이 안되는 폐기물 일부도 함께 묻히고 있었다.

제주도 관계자는 “도 폐기물 관리 조례 시행규칙(제3조 3항)에 따른 것이라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이 규칙은 폐기물 소각 시설이 고장 또는 수리 등으로 운영이 어려울 때 가연성 쓰레기를 매립장에 묻을 수 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비록 규칙을 따랐지만 이미 쓰레기가 묻힌 땅 위로 또 다른 쓰레기들이 흰색 비닐로 포장된 채 쌓여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주는 지금 쓰레기 포화 상태다. 태워야 하지만 태울 곳이 없고, 묻어야 하지만 묻을 곳이 모자라 쓰레기를 둬서는 안 되는 곳까지 쓰레기가 넘쳐 나고, 바다, 산 등 곳곳에는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쓰레기가 내동댕이쳐져 있다. 제주도 당국은 이 곳을 ‘청정의 섬’을 만들겠다 하지만 특단 대책이 없으면 제2의 쓰레기 대란이 터지거나 쓰레기의 섬이 될지 모른다는 걱정들이 나오고 있다.

제주환경연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는 하루 평균 약 1,169톤(2018년 기준)의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다. 인구 1인 당 1일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2㎏으로 전국 평균 1.03㎏의 2배(2017년 기준)에 가깝다. 전국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1위다. 김정도 팀장은 “특히 저비용항공사(LCC)가 제주 노선을 취항한 2000년대 중반 이후 매년 관광객이 100만 명씩 늘고, 인구도 1만명 이상 늘면서 쓰레기도 기하 급수적으로 늘었다”고 소개했다. 실제 2011년 제주에서 발생한 쓰레기 량은 하루 평균 627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2018년에는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제주도 밖으로는 가지도 못하는 제주도 압축 쓰레기

이 쓰레기를 목적지 별로 보면 소각장으로 향하는 것이 332톤, 매립지 210톤, 재활용시설 417톤, 음식물 쓰레기 210톤이다. 하지만 목적지만 정해졌을 뿐 처리가 제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김정도 팀장은 “소각장으로 간 쓰레기 중 매일 약 100톤은 소각되지 못하고 압축 쓰레기 형태로 쌓여 있고 재활용 쓰레기도 절반만 처리되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방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쓰레기를 고체연료 형태로 만들어 육지나 해외로 수출하기도 했지만, 올 초 ‘필리핀 압축 쓰레기 사태’ 때 제주에서 외부 업체를 통해 내보낸 쓰레기의 상당량이 사실은 단순 쓰레기를 연료로 속였던 사실이 드러나 큰 파장이 인 뒤에는 쓰레기를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제주에서 나온 쓰레기는 섬 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소각, 재활용, 재처리 등 어느 것 하나 정상적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채, 급한대로 묻고 보자는 식의 ‘땜질 처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쓰레기 묻을 곳도 없어 매립지 다시 파내 또 다시 묻기도

섬 안에 쓰레기를 묻을 만한 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제주환경연이 7~8월에 걸쳐 도내 쓰레기 매립장(부속섬) 12곳을 전수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제주시 매립장 중 봉개를 포함해 동부, 서부 등 3곳은 묻을 수 있는 양을 초과했음에도 계속 매립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서귀포시 매립장의 평균 매립률도 95%에 달해 당초 계획보다 이른 내년 상반기면 다 채워질 것이라는 게 제주환경연의 예상이다.

그러다 보니 제주도는 압축 쓰레기를 둘 공간도 부족해 이미 쓰레기로 꽉 찬 공간을 다시 파내 새로운 쓰레기와 함께 또다시 묻는 비정상적인 ‘매립지 재활용’을 시도하거나, 공식적으로 매립이 끝난 구역 위에다 대규모 압축 쓰레기를 쌓아 두고 있다. 악취는 기본이고 음식물 쓰레기 찌꺼기가 썩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 때문에 지난 5년 동안 매립장 인근에서 9건의 불이 나기도 했다는 게 제주환경연의 주장이다. 당초 제주도는 2021년까지 서귀포에 광역 음식물 폐기물 처리 시설을 지으면 봉개 음식물 처리 시설은 운영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예산 확보 문제 등을 이유로 2023년 이후로 미뤘다.

같은 날 찾은 제주 한림읍 금능농공단지 폐기물 재활용 회사 제주클린에너지. 입구를 지나자 마자 산처럼 쌓여 있는 흰색 쓰레기 더미가 숨을 막히게 했다. 김태윤 대표는 “4년 동안 가정집, 농장, 면세점, 호텔 등 제주 곳곳에서 실려 온 비닐, 플라스틱을 압축해서 쌓아 놓은 것”이라며 “하지만 이달(8월) 초부터 더 이상 쌓아 둘 곳이 없어 쓰레기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버려진 비닐과 플라스틱을 압축한 뒤 3개의 용융로에 녹여 기름을 만든다. 이 기름은 남부발전의 발전소와 아스팔트콘크리트(아스콘) 공장을 가동하는 연료로 쓰인다고 한다. 김 대표는 “납품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남부발전이 7월부터 발전소 연료를 바이오 중유로 교체하면서 거래가 끊겨 연료를 생산해도 갈 곳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답답한 건 김 대표만이 아니다. 매일 이 공장으로 오던 쓰레기 20~30톤을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하는 제주도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 제주도 관계자는 “도내 쓰레기 처리를 위해서라도 쓰레기에서 만들어 낸 열분해유 활용도를 높이면 좋겠지만 새 연료인 바이오 중유에 섞어 쓸 수 없을까를 두고 남부발전과 협의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고 전했다. 제주클린에너지의 상황은 도가 직접 나서 특정 회사에 쓰레기를 받아 줄 것을 요청하고 그 공장의 가동 상황까지 챙겨야 할 만큼 제주도 내 쓰레기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김 대표는 “쓰레기에서 연료를 만드는 입장이지만 제2의 쓰레기 대란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물, 플라스틱 등 해양 쓰레기는 방치 중

설상가상 격으로 제주 곳곳에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한 쓰레기들도 쌓여 가고 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제주 고산기상대 인근 바닷가에는 플라스틱, 부표, 밧줄, 고깃배에서 쓰고 버린 그물 등이 눈에 띄었다. 스티로폼이 모으기 힘들 정도의 작은 알갱이 형태로 하얗게 눈처럼 쌓여 있는 것도 보였다. 심지어 라벨에 중국어가 적힌 플라스틱 통도 여럿 눈에 띄었는데 인근의 한 주민은 “중국에서 버린 플라스틱이 조류를 타고 제주도 서쪽 해안으로 떠밀려온다”며 “자원 봉사 단체나 도에서 나온 사람들이 치운다고는 하지만 그때뿐”이라고 전했다. 특히 제주자원순환연대가 제주환경연과 공동으로 제주 구좌읍 김녕리 해안과 서귀포 사계리 해안 2곳을 조사한 결과, 수거된 쓰레기(1,222건)의 59%가 바다거북 등의 목숨을 앗아 가며 해양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지목되는 플라스틱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는 현재의 쓰레기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다음달 문을 열 예정인 동복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의 소각장이 가동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하루 처리 용량 500톤의 소각장이 문을 열면 도 전체에서 발생하는 400톤(일 평균) 넘는 가연성 폐기물을 충분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묻을 필요가 없어진다”며 “재활용 잔재물과 음식물 쓰레기 찌꺼기도 이 소각장에서 처리하면 된다”고 답했다. 또 현재 쌓여 있는 압축 쓰레기는 기존 제주, 서귀포의 소각장 2곳에서 소각하겠다는 계획이다.

새 소각장만 들어서면 다 해결된다?

상황이 이런 데도 원희룡 제주지사는 제주의 인구수를 현재 약 80만명(도민 69만, 체류 관광객은 10만)에서 100만명으로 늘리고 이를 위한 제2공항 신설을 포함한 각종 개발 계획을 내놓으면서도 정작 쓰레기 처리와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소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생활환경연구실장은 제주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으로 자립형 자원순환 지자체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제안했다. 관광객과 도민이 철저하게 폐기물 배출에 참여하고, 도는 관광지라는 특성을 살려 1회용 컵 보증금제 도입, 텀블러를 사용하면 다양한 도내 관광 혜택을 주는 등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이어 “민간 영역에서 시도되는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 등 새로운 가치를 더한 것) 등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인센티브도 고려해 봐야 한다”며 “도내에서 발생한 폐기물은 도내에서 회수해서 재활용하는 자족형 자원회수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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