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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온이 폭스바겐의 이단아인 이유

폭스바겐은 자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아테온을 꼽는다. 취향에 따라선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테온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크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테온은 여러 면에서 기존 폭스바겐과 선을 그은 이단아다. 동시에 세단으로는 폭스바겐의 기함이기도 하다. 내외부 전문가의 평을 참고해 아테온의 디자인을 분석했다.

아방가르드 앞세운 폭스바겐의 도발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프랑스어다. 원래 군사용어로, 척후병 또는 최전선에 투입하는 정예부대를 뜻한다. 한자로는 앞 ‘전’과 지킬 ‘위’를 짝 지은 ‘전위(前衛)’다. 그런데 분야를 예술로 바꾸면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종교와 귀족 취향에 ‘올인’했던 기존 예술의 관습과 기준을 부정하고,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을 가리킨다. 이른바 ‘전위예술’이다.

지난 2018년, 폭스바겐이 아방가르드를 소리 높여 외쳤다. 진지하고 보수적인 기업 이미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다. 미국 시장용 골프(래빗)의 트림이나 휠 이름 등에 쓴 적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 차종의 디자인을 아예 아방가르드로 정의했다. 폭스바겐의 첫 ‘4도어 쿠페’ CC의 후속으로 등장한 ‘아테온(Arteon)’이 주인공이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폭스바겐은 전통적으로 차명에 큰 의미를 부여 않던 브랜드. 오죽하면 회사명도 독일어로 ‘국민차’다. 폭스바겐의 싹을 틔운 비틀 또한 정식 이름이 아니었다. 딱정벌레 닮은 외모가 낳은 별명이었다. 1998년 뉴 비틀로 진화하면서 처음 공식 차명으로 거듭났다. 폭스바겐은 그제야 이전 세대를 비틀로 규정했다. 출시 60년 만이었다.

이후 폭스바겐의 작명도 단순하고 명쾌했다. 가령 바람 이름으로 몇 차종을 뚝딱 해치웠다. 제타와 보라, 시로코, 골프, 파사트가 좋은 예다. 그밖에 투아렉은 사하라 사막의 유목 부족, 페이톤과 이오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티구안이 좀 특이한데, 타이거와 이구아나를 섞었다. 독일 자동차 매체 <아우토빌트> 독자 35만 명의 투표로 정했다.

그랬던 폭스바겐이 간만에 차 이름에 힘을 줬다. 아테온은 ‘Art(예술)’와 ‘영겁의 시간’을 뜻하는 ‘Eon’을 이어 붙인 합성어. 영문 자료엔 ‘예술’을 뜻하는 라틴어 ‘Artem’을 변형한 이름이라고도 나온다. 아방가르드 디자인과 예술을 머금은 이름의 만남. 말 그대로 전위예술인 셈이다. 폭스바겐 신선한 도발, 아테온의 디자인과 관련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테온과 투아렉 그린 토비아스 슐만

지난 2015년 폭스바겐은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스포츠 쿠페 콘셉트 GTE’를 선보였다. 지나고 보니 무늬만 콘셉트카였다. 2년 후 나온 양산형을 쏙 빼닮은 까닭이다. 디자인 스케치에 선명히 드러난 이름은 ‘토비아스 슐만(Tobias Sühlmann)’. 폭스바겐 브랜드의 익스테리어 담당 디자이너로, 현재 판매 중인 아테온과 투아렉의 외장 디자인을 총괄했다.

그는 독일의 자동차 디자인 명문, 포르츠하임 공대에서 2001~2005년 운송기기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메르세데스-벤츠와 PSA 그룹에서 인턴을 마치고, 독일 포츠담의 폭스바겐 디자인 센터에서 벤틀리와 람보르기니, 부가티, 폭스바겐의 콘셉트카를 디자인했다. 2014년 폭스바겐 본사로 들어가 파사트와 크로스블루 콘셉트, 아테온, 투아렉 등을 그렸다.

2017년 슐만은 부가티로 옮긴다. 제네시스가 시론을 그린 사샤 셀리파노프를 스카우트한 까닭이다. 부가티에서 9개월을 보낸 그는 2018년부터 영국 애스턴마틴의 외장 디자인 총괄로 근무 중이다. 참고로, 사샤 셀리파노프는 지난해 제네시스를 나와 스웨덴의 하이퍼카 브랜드 쾨닉세그로 옮겼다.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 이 같은 ‘도미노’ 이직은 흔하다.

“아테온의 스포티한 라인들은 매우 기능적인 개념을 담고 있어요. 형태와 기능이 여기서 진보적인 방식으로 공통분모를 찾죠. 긴 휠베이스와 늘어난 루프라인, 쿠페 스타일 디자인, 넓은 리어 해치 덕분에 아테온은 일반적인 세단보다 더 넓은 공간과 유연성을 제공합니다.” 슐만의 설명인데, 그의 상관인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클라우스 비숍의 철학과 일치한다.

2018년 베를린에서 인터뷰를 위해 클라우스 비숍을 만나 “디자인을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말문을 열었다. 장황한 설명을 풀어놓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간결하고 명쾌했다. “기술적 문제에 대한 미학적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죠.” 클라우스 비숍의 미학적 취향, 토비아스 슐만의 진보적 성향이 맞물려 낳은 결실이 바로 아테온이었다.

스포츠카와 세단의 경계 허문 주인공

아테온은 기존 CC 후속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거 페이톤의 몫이었던 폭스바겐의 꼭짓점 역할을 짊어진 까닭이다. “궁극의 경제적 브랜드라는 명성은 유지하면서 고급 시장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폭스바겐의 꿈을 이뤄줄 차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빌>에 디자인 비평을 연재하는 전 GM 디자이너, 로버트 컴버포드의 평가다.

아테온 디자인은 언뜻 봐도 멋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층 흥미진진하다. 가령 보닛이 폭스바겐 전 차종을 통틀어 가장 크다. 토비아스 슐만은 “보닛을 열면 휠 하우징 쉘이 보이는데, 클래식한 스포츠카면 모를까 이 같은 세단에선 흔치 않다”고 말한다. 그는 입체적으로 빚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을 결합해 폭스바겐의 새로운 ‘얼굴’을 완성했다.

디자인 관습도 과감히 무너뜨렸다. 보닛과 그릴, 헤드램프, 범퍼의 경계가 대표적. 보닛 끝자락이 그릴 위쪽을 파고들었고, 그릴을 앞 범퍼의 절반 이상 늘어뜨렸으며 좌우 끝엔 LED 헤드램프를 녹여 넣었다. 그 결과 차체가 보다 넓어 보인다. 로버트 컴버포드는 “그릴과 헤드램프 사이에 간극이 있는데, 공력성능에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닛 앞쪽 절개선이 헤드램프와 그릴을 가로지르는데, 여닫을 때 충격으로 인한 변형을 걱정할 만큼 바짝 붙어 있다. 충분한 강성과 정교한 설계 없인 욕심내기 어려운 도전이다. 비단 앞모습뿐 아니라 아테온의 차체 표면을 오려낸 선은 지극히 얇고 가지런하다. 패널 간 단차, 즉 틈새를 줄이기 위한 폭스바겐의 병적인 집착은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로버트 컴버포드가 ‘매의 눈’으로 살핀 디테일도 관심을 모은다. “휠 아치가 보조개처럼 살짝 들어갔고, 윤곽을 아우른 에지는 타이어 주위를 도톰하게 감싸요. 보닛 좌우를 예리하게 꺾은 선은 윈도 밑에 얇은 면을 만든 뒤 사라지는데, 표면처리가 예술이에요. 말쑥하고 날렵하며 우아하게 절제하면서 공기역학적 효율까지 챙긴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어요.”

감성과 이성 자극하는 그란 투리스모

“아테온에는 차 전체를 따라 흐르고 볼륨을 바짝 끌어 내리는 라인이 있어요.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시작해 차체 옆면을 깔끔하게 지나 테일램프로 이어지죠. 덕분에 차체 뒷면 높이를 시각적으로 낮추고, 어깨 부위는 바짝 높이는 효과를 냅니다. 프레임 없는 도어 덕분에 윈도 위로 크롬 라인을 단절 없이 이을 수 있었어요.” 클라우스 비숍의 설명이다.

아테온의 트렁크 도어는 뒤 유리와 한 덩어리를 이룬다. 덕분에 스포츠 쿠페처럼 지붕에서 꽁무니로 매끈하게 이어지는 디자인을 구현할 수 있었다. 패스트백 스타일의 해치백인 셈이다. 그 결과 563~1,557L의 트렁크를 확보했고, 짐을 싣고 내리기도 편하다. 클라우스 비숍의 말처럼, 기술적 문제를 미학적으로 해결해 멋과 실용성을 동시에 거머쥔 사례다.

또한, 외부 디자인 테마를 실내로 고스란히 이었다. 대시보드와 도어 숄더를 하나의 시각적 요소로 디자인해 5명의 승객을 보호막처럼 감싸 안는 형태로 구성했다. 수평으로 반듯히 뻗은 대시보드는 앞 도어 트림의 패널로 자연스럽게 녹아 든다. 송풍구는 라디에이터 그릴의 테마로 완성했다. 하나의 밴드처럼 실내 전체를 가로지르고 반짝이는 띠를 품었다.

2002년 폭스바겐은 페이톤과 투아렉을 앞세워 고급차 시장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1997~1998년 A-클래스와 스마트로 텃밭 넘본 메르세데스-벤츠에 반발해 당시 회장 페르디난트 피에히가 야심차게 준비한 ‘역공’이었다. 하지만 페이톤은 2016년 결국 무릎을 꿇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다행히 투아렉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헛되지 않았다.

폭스바겐이 밝힌 아테온의 정체성은 ‘그란 투리스모’. 장거리 여정을 편안히 소화할 고급차를 뜻한다. 아테온은 기존 관습을 따르는 대신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그 결과 브랜드 신분, 형태로 나눈 장르, 이성과 감성, 멋과 실용성 등 첨예한 대조 이룬 경계의 중심에 섰다. 적어도 폭스바겐에선 전례를 찾기 힘든 이단아다. 게다가 어떤 폭스바겐보다 멋지다.

<출처 : 로드테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