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딜러

차량검색

중고차 시세 조회

개인매물

자동차 정보

[최초 시승] 뿌리 굵은 SUV, 폭스바겐 투아렉

마치 도로 위를 흐르듯 달렸다. 공기로 떠받든 차체는 노면 충격에 아랑곳없었고, 2,250㎏ 육중한 덩치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운전대 가운데에서 빛나는 엠블럼은 ‘VW.’ “아니, 어떻게 이 차가 ‘국민차(독일어로 폭스바겐)’야?”

투아렉은 애초에 그랬다. 벤틀리 플랫폼으로 빚은 대형 세단 페이톤과 함께 브랜드 고급화를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그러나 페이톤이 사라진 지금은 브랜드의 독보적인 플래그십. 초대 투아렉처럼 재료부터 남다르다. 벤틀리 벤테이가, 람보르기니 우루스, 포르쉐 카이엔 등을 낳은 ‘MLB 에보’ 플랫폼을 밑바탕 삼는다. 브랜드 대형 SUV 테라몬트에도 결코 허락하지 않은 값진 재료다. 이토록 뿌리부터 굵직한 투아렉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마주했다.

고화질 사진
첫인상? 엄청 커졌다는 제원을 보고 한껏 기대했건만, 실제 마주하면 덩치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 높이가 낮아서다. 에어서스펜션 자랑하듯, 투아렉은 주차 시에 바닥에 달라붙는다. 제원상 높이도 단 1,670㎜에 불과하다. 경쟁상대(BMW X5 1,745㎜, 렉서스 RX 1705㎜) 중 가장 납작한 수준으로 마치 고성능 차처럼 웅크린 모양새다.

물론 큰 차다. 길이 4,880㎜, 너비 1,985㎜로 각각 이전보다 79㎜, 45㎜ 늘었다. 납작하고 길어진 덕분에 이전보다 쭉쭉 뻗어 보이는 비율이 눈에 띈다.
주목할 점은 예리한 그래픽. 최신 폭스바겐이 그렇듯 손대면 베일 듯한 날카로운 선을 철판에 그어 넣었다. 보닛과 캐릭터라인, 펜더 등 또렷한 굴곡이 마치 고화질 사진처럼 선명하다. 특히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강철 등 각기 다른 소재를 섞어 썼음에도 선 두께와 면의 품질이 하나처럼 균일하다. 이를 위해 프레스 공정을 7차례나 치렀다고.

과감한 15인치
묵직한 문짝을 당기면 가장 먼저 센터페시아에 눈길이 꽂힌다. 세상에, 15인치 화면이다. 마침내 컴퓨터 모니터만 한 화면이 자동차 실내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의 버튼을 꿀꺽 삼켰고, 12.3인치 디지털 계기판과 하나처럼 이어졌다. 여기에 계기판 뒤편에서 빛나는 헤드업디스플레이까지 모두 눈에 담으면, 새삼 최첨단 차에 앉아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공간은 무척 넉넉하다. 성인 남성 표준 체격 기자가 뒷자리에 앉으면 무릎 공간이나 머리 공간이 여유롭게 남는다. 등받이 각도를 세 단계로 21°까지 조절할 수 있어, 뒷자리 회장님처럼 여유롭게 늘어진 자세도 문제없다. 시야엔 뻥 뚫린 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이만 무려 1.27m에 달하는 큼직한 파노라마 선루프다.
머리카락 하나 찔러 넣기 힘든 부품 간 단차는 폭스바겐답다. 물론 아래 급들과는 다르다. 대시보드 아래를 나무 패턴이 살아있는 나무 무늬 장식이 가로지르며, 위쪽엔 부드러운 가죽을 덮었다. 밀도 높은 패턴으로 꾸민 무드 조명은 밤에 가치를 더할 장식. 다만 12.3인치 화면과 15인치 화면 사이를 가르는 세로 단차는 말끔한 분위기를 조금 헤친다.

치밀한 마감은 트렁크로 이어진다. 네모난 공간에 폭신한 마감재를 반듯하게 짜 넣었다. 트렁크 용량 810L로 동급 경쟁차보다 클 뿐 아니라 이전 697L에서 무려 113L나 공간을 늘렸다. 트렁크 안쪽에 달라붙은 별도의 버튼으로 에어서스펜션 압력을 빼 짐칸 높이를 낮추거나 뒷좌석을 접을 수 있어 활용성도 높은 편. 2열까지 모두 접은 트렁크 용량은 1,800L다.

아낌없는 투자의 결과
‘요즘 디젤은 가솔린 엔진 못지않네요.’ 한창 주행 중일 때 동승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맞다. 투아렉 6기통 디젤 엔진은 일상 주행 상황에서 가솔린 엔진처럼 매끄러웠다. 속도를 조금만 높여도 디젤 특유의 소리가 주행 소음 뒤로 자취를 감출 정도다. 단지 공회전 때, 또는 급가속 때에만 이따금 디젤 특유의 걸걸한 존재감을 전할 뿐이다.

사실 기자는 엔진보다는 여유로운 주행감에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국산 F 세그먼트 대형 세단을 타지만, 투아렉은 그 길쭉한 세단보다도 더 넉넉한 감각으로 도로를 누볐다. 특히 도로 위 자잘한 충격을 삼키는 실력이 압권이다. 도로와 도로 사이 이음매, 작은 요철을 운전자 몰래 넘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에어서스펜션 덕분이다. 공기 압력으로 차체를 띄우기에, 자잘한 충격을 확실하게 걸러버린다. 철제 스프링처럼 충격을 받은 후 튕겨 나오는 반동도 적다. 강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여유롭게 달리다가도 시속 120㎞로 속도를 높이면 높이를 최대 25㎜ 낮추어 차체를 바닥에 붙인다. 반대로 험로에서는 최대 70㎜ 차체를 들어 올려 험로 주파 성능을 높인다. 무려 7가지 주행 모드로 온·오프로드를 아우르는 변화무쌍한 성능의 핵심이다.

공차중량은 2,250㎏. 매우 육중한 무게지만, 실제 운전할 땐 예상외로 가뿐하다. 힘이 충분해서다. 시승차 ‘3.0 TDI 프레스티지’에 들어간 V6 3.0L 디젤 엔진은 2,250~3,250rpm까지 61.2㎏·m 최대토크를 줄기차게 뽑아낸다. 어떤 속도에서든 페달을 밟으면 넉넉한 토크로 확실하게 밀어준다. 최고출력은 283마력으로 고속에서도 힘 빠짐은 느끼기 어렵다.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투아렉은 6.1초 만에 시속 100㎞로 가속하며 최고속도는 238㎞/h다.

움직임도 무게를 잊었다. 낭창한 서스펜션 달린 묵직한 SUV가 또 운전대를 틀면 작은 차처럼 쏠림 없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비결은 '전자식 안티 롤 바'다. 안티 롤 바란, 선회 시 너무 차체가 한 쪽으로 기우는 현상을 막기 위해 좌우 바퀴 사이를 이어놓은 막대. 투아렉은 이 막대 중간에 48V 전기 모터를 심었다. 모터가 선회 시 막대를 비틀어 코너 바깥 바퀴는 들어 올리고, 안쪽 바퀴는 낮추어 쏠림을 억제한다.

뒷바퀴를 트는 사륜조향 시스템 역시 특징. 시속 37㎞ 아래의 속도에서는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최대 5° 기울여 작은 차처럼 움직인다. 덕분에 최소 회전반경 11.19m로 조그마한 해치백 골프보다 단 0.29m 클 뿐이다. 반대로 시속 37㎞를 넘어서면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최대 5°까지 움직여 안정적인 직진 주행을 돕는다.

이토록 투아렉은 안락한 승차감과 역동적인 주행성능 두 상반된 가치를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최신 기술과 값비싼 장비를 마다하지 않았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주행 성능의 비결이다.
한편 아쉬운 점도 있었다. 15인치 화면이 무색하게 내비게이션이 무심하다. 도로 방향을 세심하게 알려주는 국내 내비게이션과 달리 안내가 단순해 서울처럼 복잡한 도심에서는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또, 앞뒤 285㎜ 너비 타이어의 든든한 주행감은 만족스러웠지만, 도로와 타이어가 부딪히는 소리는 다소 큰 편이다.

외유내강
첨단 운전자 보조 장치는 풍족하다. 0~250㎞/h 속도에서 앞 차와 속도를 제어해 달리는 어댑티브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이 달렸고, 더 나아가 0~60㎞/h 속도에서 작동하는 트래픽 잼 어시스트가 들어가 정체 구간에서 반자율주행을 누릴 수 있다. 국내 출시한 투아렉 전 모델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장비다.

시승 코스가 짧았던 탓에 실 연비는 계측하지 못했다. 다만, 시속 100㎞로 항속할 때 8단 자동변속기와 토크 높은 디젤 엔진이 어우러져 rpm이 겨우 1,300 수준에 불과하다. 고속 주행 시 높은 연비를 기대할 수 있는 대목. 참고로 공인 복합 연비는 L당 10.3㎞다.

폭스바겐 투아렉. 화려한 차 아닌 좋은 차다. 기본기와 완성도에 아낌없이 투자한 밑바탕을 수수하게 마감해 고가의 성능 장벽을 끌어내렸다. 다른 의미의 외유내강인 셈. 투아렉은 남에게 보이는 가치보다 내가 느끼는 만족감에 더 집중한 고급 SUV였다.

<출처 : 로드 테스트>